홍경래의 난의 배경으로 서북민에 대한 차별 대우가 있습니다. 서북민은 평안도 사람들을 의미하며, 이들은 지리적으로 한반도 북부 지방에 위치하여 중앙 정부의 입자에서는 변방으로 취급받았습니다. 또한 평안도는 척박한 땅이 많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이 지역은 성리학이 제대로 보급되지 않아 관직 진출 및 승진이 어려웠습니다.
서북민이 차별을 받게된 계기는 세종 때 북방 개척 때 이후 차별이 본격화되었습니다. 특히 중종 이후 사민 정책이 변질되어 죄인의 가족을 서북 지방으로 보내는 형태로 바뀌면서 유배지로 낙인찍히게 되면서 더욱 차별이 심화되기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