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형은 사형 바로 다음으로 무거운 형벌입니다. 유배형은 2000리, 2500리, 3000리으로 나누지만 실제로는 조선에서는 600리, 750리, 900리 등으로 조정되어 운영되었습니다. 유배는 단순히 자연속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가족, 친지들과 단절되고, 정치적 영향력이 상실되는 조치입니다. 송시열은 예송논쟁에서 패해 1679년부터 1680년까지 거제도에서 유배 생활을 하였습니다.
거제도는 수도 한양에서 매우 떨어진 곳으로 교통이 극히 불편해 사실상 완전히 고립되는 처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