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왜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는건가요?
안녕하세요. JAMESON입니다.
출처: 오마이뉴스 왜 가을이 독서의 계절일까? 안흥기 기자 2006.09.26 입니다
'독서의 계절' 가을이 어김없이 닥쳤다. 독서의 계절이지만, 하늘은 맑고 바람은 선선해서 집에서 책을 읽기보다는 산으로 들로 놀러다니기 좋은 계절이 가을이기도 하다.
가을엔 책읽기보다 놀러다니고 싶은 계절이라는 것은 '독서의 계절'임에도 책이 그리 많이 팔리지 않는다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지난 2005년 한 해 동안 교보문고 전국 10개 매장의 책 판매량 통계를 보면, 독서량의 중요한 지표인 소설은 여름에 최고 판매량을 보였다가 가을철에 뚝 떨어지고, 다시 겨울에 들면서 상승 곡선을 그리는 걸 알 수 있다. 가을에 책을 많이 안 읽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책을 많이 안읽는 가을이 언제부터 독서의 계절이 됐을까.
'가을에 독서하기 좋다'는 말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흔히들 알고 있는 '등화가친(燈火可親)', 즉 '등불을 가까이 하기 좋다'는 뜻의 이 고사성어는 중국 당나라의 문학자이며 사상가인 한유(韓愈·768~824)가 그 아들에게 독서를 권하기 위해 지어 보낸 시에서 등장한다.
그 내용은 '가을이 돼서 서늘하니 등불을 가까이 할 수 있다, 책을 펴 보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얘기다.
그러나 가을보다는 겨울을 독서의 계절로 권하는 고사성어도 있다.
'독서삼여(讀書三餘)'는 삼국지에 등장하는 말로, 후한 말기의 동우(董遇)라는 사람이 가르침을 원하는 이들에게 겨울·밤·비오는 날 이 세가지 때를 책읽기 좋은 때로 권하면서 한 말이다. 농사일이 없는 틈틈이 책을 읽으라는 내용이다.
예로부터 고사성어를 통해 독서와 계절을 연관지어왔지만, 독서하는 인구가 일부 계급에 한정돼 있었기 때문에 가을하면 독서를 떠올리게 할 정도의 사회적 영향이 있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1920년대에 도서관 무료공개 행사 등 가을 독서캠페인 본격 시작▲ <동아일보> 1924년 9월 18일자에 실린 「신량은 독서계로」 기사.ⓒ 한국역사종합정보센터
문자를 해독하는 인구가 늘어나기 시작한 근대에 이르러 신문과 잡지에서 가을을 독서와 연관시킨 문장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1920년대부터다.
이돈화는 잡지 <개벽> 27호(1922년 9월 발행)에 게재된 「진리의 체험」이라는 논설에서 "新凉(신량 : 초가을의 서늘한 기운)이 이제 郊墟(교허 : 마을의 들과 언덕)에 入(입 : 들어옴)하엿도다. 加히써 燈火(등화 : 등불)를 親(친:가까이)할 만한 시대가 왓다. 학교는 개학을 시작하고 書生(서생 : 공부하는 이)은 簡編(간편:책)을 捲舒(권서 : 책을 펴다)할 시절이 왓다"고 독서할 것을 권했다.
1924년 9월 18일자 <동아일보>에는 「신량(新凉)은 독서계로」라는 제목의 기사가 등장한다. 이 기사는 '가을이 되어 독서하기 좋다'는 내용과 함께 경성도서관 방문객에 대한 통계 및 이용현황 등을 설명하고 있다.
1925년 10월 30일자 <조선일보> 「경성도서관에서 본 최근의 독서방향」이라는 기사 첫머리에는 "독서계절을 당하야"라고 기사 첫머리부터 가을을 '독서계절'로 정의했다. 당시 가을을 독서의 계절로 생각하는 풍조가 이미 있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이 기사에 이어지는 「각 도서관 무료공개」라는 제목의 짤막한 기사다. 이 기사에는 '도서관주간'을 맞아 경성부립도서관과 조선총독부도서관이 무료공개 행사를 한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독서를 장려하는 캠페인에 대한 홍보가 이뤄진 것이다.
이 기사가 나온 1925년은 조선총독부도서관이 문을 연 해이기도 하다. 총독부도서관은 이 해 가을에 서울에 있던 공공도서관들을 중심으로 '도서관협회'를 조직, 매년 가을에 도서관 무료공개와 같은 독서캠페인을 본격적으로 벌이기 시작했다.
<조선일보> 1925년 10월 30일「최근 경성도서관의 독서방향. 법률과 정치사회의 열람이 증가 / 각 도서관 무료공개, 내월 1일부터 도서주간을 맞아」
<동아일보> 1925년 11월 15일 「서적대 일할증 폐지운동, 도서관협회에서 독서사상을 보급식히려고」
<동아일보> 1926년 10월 31일 「도서관주간, 경성부내 각 도서관이 일주일간 무료공개」
1927년부터는 '독서주간'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고, 각 신문들은 매년 가을 독서주간에 열리는 독서캠페인에 대한 내용을 홍보하거나 독서를 장려하는 기사들을 내보내기 시작한다.
<조선일보> 1927년 9월 7일 「가을철과 읽을 책의 선택」
<동아일보> 1928년 9월 28일「독서할 시절이 왔다. 눈 위생에 주의 가뎡에 볌연 못할 문뎨의 하나 독서」
<동아일보> 1929년 10월 30일 「낮은 짧고 밤은 길어간다. 독서에 친할 씨-슨은 이때가 한참이다」
<동아일보> 1929년 10월 30일 「<독서주간> 글 읽을 철은 왓다」
'문화통치' 도구이면서 '실력양성' 통로이기도 했던 독서▲ <동아일보> 1926년 10월 31일자 「도서관주간, 경성부내 각 도서관이 일주일간 무료공개」기사.ⓒ 한국역사종합정보센터
그런데 이 독서주간이라는 행사는 미국에서 시작, 일본을 거쳐 식민지 조선에 건너온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는 1919년부터 어린이에게 좋은 책을 읽히자는 취지로 '어린이 독서주간(Children's Book Week)을 시행했다.
당시 가장 선진적이라고 평가되던 미국의 도서관체제와 활동을 본받은 일본에서 독서주간이 시작됐고, 이것이 다시 식민지 조선에 도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면 일제는 왜 식민지에서 독서캠페인을 벌였을까. 총독부도서관의 설립이 일제 문화통치의 일환으로 평가되는 연장선상에서 바라볼 수 있다.
1920년대는 일제가 무단통치를 끝내고 문화통치를 표방했던 시기다. 출판되는 책들 거의가 다 일본어 서적인 상황에서 독서는 조선인을 일본말과 일본문화에 동화시키기 좋은 문화적 도구였던 셈이다.
그러나 당시 조선의 지식인들은 독서를 근대적인 지식과 사상을 받아들일 수 있는 실력양성의 도구로 보았고, 애국계몽운동의 차원에서 독서를 크게 권장했다.
1931년 <동아일보>는 <독서주간>이라는 면을 신설, 한 해 동안 매주 1면을 독서를 권하는 내용으로 채울 정도였다. 당시 매일 4면을 발행하던 <동아일보>였으니, 당시 독서보급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동아일보>의 <독서주간> 면은 세계의 철학·사상·문학 등 각 분야의 명저를 소개하고 조선 고전해설, 독서와 관련 격언 등 단순히 독서보급뿐 아니라 양서보급에도 앞장섰다.
이뿐 아니라 <동아일보>는 각 지역의 독서회 창립소식을 거의 빼놓지 않고 꾸준히 게재, 독서보급에 대한 열의를 보이기도 했다.▲ <동아일보> 1931년 2월9일 4면 <독서주간>면 일부.ⓒ 한국역사종합정보센터
해방 뒤 독서주간 중단돼도 신문지상 가을 독서캠페인은 계속
이후부터 '가을=독서의 계절'이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기사는 매년 가을만 되면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됐다.
해방을 맞아 <독서주간>은 잠시 명맥이 끊겼지만 신문을 통한 가을 독서캠페인은 끊임없이 계속됐다. 1955년에는 정부와 한국도서관협회가 다시 가을 독서주간 행사를 시작했고, 현재는 '독서의 달'로 운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