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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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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26

제승방략체제라고 하는 것이 어떤 체제인가요?

안녕하세요.

한국사 역사에 나오는 제승방략체제라고 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슨 체제인가요?

제승방략체제의 도입시기와 활용은 어떻게 되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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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23.05.27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북방 야인의 침입에 대비하여 함경도 8진(鎭)의 방어를 논한 병서(兵書).

    2권 1책 활자본. 《제승방략》은 원래 2권 1책의 목판본으로 조선 초기 김종서(金宗瑞)가 처음 저술했다고 전해지는 것을 1588년(선조 21) 함경북도병마절도사 이일(李鎰)이 증보(增補)하였고, 현재 전해지는 책은 1670년(현종 11) 함경북도병마평사 이선(李選)이 중간한 것이다. 최초 저술자가 김종서로 알려진 것은 이선의 발문(跋文)에서 비롯되었는데, 최근 연구에 의하면 김종서가 아니라 이일이 처음 저술했다는 견해도 있다.

    내용은 함경도의 8진인 경흥진(慶興鎭), 경원진(慶源鎭), 종성진(鐘城鎭), 온성진(穩城鎭), 회령진(會寧鎭), 부령진(富寧鎭), 길주진(吉州鎭), 경성진(鏡城鎭)의 산천, 부락, 보루의 위치와 공수(攻守)의 요해(要害) 등을 상세히 기록하고, 다음에는 8진의 경비대가 지켜야 할 군무 29조, 금령(禁令) 27조를 적어 놓고, 온성, 종성, 회령, 경원, 길주, 부령 등 6진에 있는 군관들의 관명을 써 놓았다.

    권1의 머리에서 권2의 중반에 걸쳐 열진방어(列鎭防禦)가 실려 있다. 경흥의 서수라보(西水羅堡)부터 시작하여 부령, 종성, 명천, 길주 소속의 진보에 이르는 합계 44진보에 대해 차례로 설명을 하고 각 진보의 형세, 위치, 성곽, 산수, 봉수 및 적로(賊路)와의 거리와 추격, 요격의 요지 등과 고사 등이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특히 경흥, 경원 등에는 창상곡(倉上穀) 및 군량곡의 남아 있는 양이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다음 제2권의 후반부에는 군무(軍務) 29조, 금령(禁令) 27조, 육진대분군(六鎭大分軍), 삼읍분군(三邑分軍), 청행제승방략장(請行制勝方略狀), 비국회관(備局回關), 방량식(放量式)이 수록되어 있는데, 군무 29조는 각 진, 보의 군사들이 지켜야할 수칙, 적병의 침구(侵寇)소식을 들으면 각 진, 보의 군사는 어떻게 움직이고 어떻게 소식을 보고할 것인가와 군비(軍備), 천기(天氣) 등에 대한 내용이다. 금령 27조는 엄격한 법령으로 침구시(侵寇時)에 기간 내에 달려가 구원하지 않으면 군법으로 다스리며 각기 그의 소속장(所屬將)을 잃었을 때에는 그 아래 장수를 참(斬)하며 이름을 불러도 응하지 않는다거나, 기한 내에 이르지 않는다거나 군호(軍號)가 불명하거나, 함부로 떠들고 웃고 상관을 무시하거나, 원망하는 말을 하거나, 요망한 말을 하여 군심(軍心)을 어지럽히거나, 남의 재물, 남의 수급(首級)을 도둑질 하거나, 꾀병하여 전선에 달려가지 않거나, 부상하여 죽은 체 하였다가 도망하는 자 등은 모두 참하며, 호물(胡物)을 탐하거나, 군중(軍中)에서 큰소리로 부르는 자 등은 벌한다는 벌칙 조항 등이다.

    다음으로 육진대분군은 6진의 관직과 부서 등의 명칭을 수록한 것이고, 방량식은 군사와 군마에 대하여 군량 지급량을 명시하였는데, 예를 들면 인마(人馬) 1만의 하루 소요량이 쌀 533석 5두와 콩 333석 5두라고 되어 있다. 책 끝에는 1670년(현종 11)에 이선이 쓴 발문이 있다. 이 책은 조선시대의 국경방어태세 및 군사제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규장각에 원본 2부가 보관되어 있고, 1936년 조선사편수회에서 조선사료총간(朝鮮史料叢刊) 제12호로 영인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제승방략 [制勝方略]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 잘난몽구스218
    잘난몽구스218
    23.05.27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중기 공신전과 궁방전 등으로 갈수록 세수가 적어지고 자영농의 숫자가 줄어들면서 조선의 병농일치, 양인개병 시스템이 붕괴되어 삼포왜란, 니탕개의 난 등 대규모의 침입때 진관 체제가 제대로 효능을 발휘하지 못해 선조때 진관 체제를 개편한 것이 제승방략체제입니다.

    이는 평소 지휘관이 없다가 전시에 중앙에서 내려온 장수가 지휘를 잡아 지방의 군대를 합쳐 대규모 부대를 편성하는 체제 입니다.

    제승방략체제는 임진왜란 초 조선군이 허무하게 무너지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함경도의 8진인 경흥진(慶興鎭), 경원진(慶源鎭), 종성진(鐘城鎭), 온성진(穩城鎭), 회령진(會寧鎭), 부령진(富寧鎭), 길주진(吉州鎭), 경성진(鏡城鎭)의 산천, 부락, 보루의 위치와 공수(攻守)의 요해(要害) 등을 상세히 기록하고, 다음에는 8진의 경비대가 지켜야 할 군무 29조, 금령(禁令) 27조를 적어 놓고, 온성, 종성, 회령, 경원, 길주, 부령 등 6진에 있는 군관들의 관명을 써 놓았다.

    -출처:나무위키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제승방략체제는 평소엔 지휘관이 없다가 전시에 중앙에서 내려온 장수가 지휘를 잡아 지방의 군대를 합쳐서 대규모 부대를 편성하는 체제를 말하는데요.



    이러한 제승방략의 장점은



    1. 병력 충원을 지방에서 하여 상비군 유지비를 줄일 수 있다.



    2. 전문 지휘 인력을 중앙에 묶어두기에 반란의 위험이 적다.



    정도를 꼽을 수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중기에 공신전과 궁방전 등으로 갈수록 세수가 적어지고 자영농의 숫자가 줄어들면서 조선의 병농일치, 양인개병 시스템이 붕괴되어 삼포왜란,니탕개의 난 등 대규모의 침입때 진관 체제가 제대로 효능을 발휘하지 못하자 선조때 진관 체제를 대체하여 개편한 군사적 시스템이 제승방략 체제 입니다.

    제승방략체제는 평소엔 지휘관이 없다가 전시에 중앙에서 내려온 장수가 지휘를 잡아 지방의 군대를 합쳐서 대규모 부대를 편성하는 체제입니다.

  • 안녕하세요. 천지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제승방략체제 > 조선 초장기 부터 딱히 지방권 조직이 없어 적들의 침입 때 제대로 방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자 세조 때 군의 지휘 체제를 통일하고 지방 중심 지역 거점에다가 군사를 배치시킨 후 근처 지역을 거점의 군대가 방어 하도록 자리잡힌 시스템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