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시와 부는 창작으로 오늘날의 문학에 가깝다.
개인의 창작력을 중시한 측면을 엿볼 수 있지만, 형식에 얽매이고 평가에서도 시관의 주관이 작용하여 공정한 평점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또한 문장 다듬기에만 골몰하고 정치나 사고체계를 소홀히 하는 학풍에 젖게 하는 폐단도 있었다. 시, 부는 거의 모든 시기에 출제되었고, 인종 17년 이후에는 종장에서 출제되기도 하였다.
시무책은 시정의 득실을 열거하고 그 해결책을 제시하는 문장으로 개인의 정치적 경륜을 나타내는 실용적인 글이었다. 시무책은 과거에서뿐 아니라 국가가 중대한 시국에 직면하거나 개혁정치가 필요할 때 5품 이상 또는 초야의 지식인까지 포함하여 상소하도록 언로를 개방하였다. 책문을 출제한 동기는 응시자의 답안을 정치수행에 참조하려는 목적이 있었으나 실제로 어느 정도 참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전기에는 시무책으로, 후기에는 책문으로 한 점이 비슷하다. 그러나 시무책은 제한 없는 시정개혁 상소의 형식이고, 책문은 제한된 문제에 따라 작성하는 개혁안이었다. 시무책은 과거에서 응시자의 식견과 당시 사회를 반영하므로 의미가 크다. 책문 또는 시무책은 삼장 중에서 때에 따라 시행 순서가 변화하였다.
논은 역사적 사실이나 경 가운데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부분에 관해서 주관적인 견해를 첨가하면서 설명을 전개하는 문장이다. 이는 시, 부보다 현실과 밀접한 관계가 있지만, 책문 보다는 대체로 현실에서 거리가 먼 관념적인 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