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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멸망은 연개소문의 사후 후손들 사이의 내분이 결정적 원인입니다. 668년 고구려가 멸망하였지만 고구려 유민들은 적극적으로 고염무, 검모잠, 안승 등 부흥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당은 고구려 부흥 운동을 막기 위해 유민들을 고구려 옛땅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 이동, 격리시키는 사민 정책을 실시하였습니다. 대조영은 중국의 영주 지역에서 일어난 거란족의 반란 틈을 이용하여 말갈족과 함께 만주 지역으로 탈출하며 동모산에서 발해를 건국할 수 있었습니다.(698) 그러나 당은 대조영 세력의 진압을 포기하고 발해군왕으로 임명하고, 당의 군현으로 편입하려 하였지만 발해국을 선포하였습니다.
당나라도 발해를 견제할 수 없었던 이유는 683년부터 713년까지 '무위의 화'라고 하는 정치적 혼란으로 정변이 거듭되었으며, 정변을 수습한 현종 초기 '개원의 치'도 얼마 가지 못하고 755년 안사의 난이 일어나 당이 쇠퇴하기 시작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