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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y천사1004
Jy천사100423.04.30

조선의 붕당정치는 언제부터 시작된건지?

안녕하세요? 조선시대에 지금의 국회처럼 붕당정치가 있었던거 같은데 역사학자들 말씀을 들어보면 그다지 질이 좋지 않았던거 같습니다. 서로 죽일려고 하고 그런거 같아요 붕당정치는 언제 어떻게 시작된 것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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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4.30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붕당정치는 조선전기의 정치 운영 형태를 말합니다.

    근래까지 일반적으로 이 정치 형태는 사화(士禍) 당쟁(黨爭)을 중심으로 망국적인 정치 현상으로 이해되었다. 이러한 부정적 인식의 개략은 다음과 같다.

    조선시대의 왕정은 당초 중앙집권 관료제로 운영되었으나 15세기 말엽부터 훈구파로 불리는 기성 관료 집단을 비판하는 사림파(士林派)가 대두했다. 이후 양자의 충돌로 여러 차례 사화가 반복하던 끝에 정치적 이해 관계를 같이 하는 무리로서 붕당이 발생해 항구적인 당쟁이 시작되었다.

    당쟁 발생의 직접적 원인으로는 선조대에 심의겸(沈義謙)과 김효원(金孝元)의 이조전랑(吏曹銓郎) 추천 문제로 생긴 양자의 반목이라고 한다.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조정의 인사들이 서인(西人)과 동인(東人)으로 나뉘고 나아가 재야의 유생들까지도 어느 한쪽을 지지해 모든 관료와 지식인들이 대를 물려가면서 대립하는 양상을 빚었다.

    동서분당 이후 붕당은 계속 핵분열을 일으키는 추세를 보였다. 동인에서 갈린 남인(南人)·북인(北人)·서인(西人)에서 나뉜 노론(老論)·소론(少論) 등을 흔히 사색(四色)이라고 하여 중심적인 붕당으로 꼽았다.

    붕당간의 대립은 지극히 배타적이었을 뿐더러 주로 복상(服喪) 문제, 세자책봉 문제 등 민생과는 관련이 없는 문제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국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온 것으로 통념되었다.

    치열한 붕당간의 대립은 영조, 정조 등의 탕평정책으로 다소 누그러졌지만 19세기에는 세도정치로 발전해 망국의 길을 초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당쟁을 망국적 정치 현상으로 본 조선시대 정치사에 대한 종래의 부정적인 인식은 형성 과정에 큰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구명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붕당정치 [朋黨政治]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의 왕정은 당초 중앙집권 관료제로 운영되었으나 15세기 말엽부터 훈구파로 불리는 기성 관료집단을 비판하는 사림파가 대두되었고 이후 양자의 충돌로 여러 차례 사화가 반복하던 끝에 정치적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무리로 붕당이 발생하게 됩니다.

    당쟁 발생의 직접적 원인은 선조대에 심의겸과 김효원의 이조전랑 추천 문제로 생긴 양자의 반목이며,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조정의 인사들이 서인과 동인으로 나뉘고 나아가 재야의 유생들까지도 어느 한쪽을 지지해 모든 관료와 지식인들이 대를 물려가면서 대립하게 됩니다.

    동서분당 이후 붕당은 계속 분열해 동인에서 갈린 남인, 북인 , 서인에서 나뉜 노론, 소론, 등을 사색이라 하여 중심적인 붕당으로 꼽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