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45년 광복이 되었지만 38선을 경계로 미소 양군이 주둔하였습니다. 특히 미군정을 친일파를 그대로 활용하여 행정, 치안을 담당하게 하였습니다. 이에 대한 반발로 제주도 도민들은 1946년 3.1절 기념식이 대대적으로 거행되었습니다. 이날 하필 한 어린아이가 말굽에 다치면서 일어난 소요로 경찰에 의해 발포로 6명의 무고한 시민이 사망하였으며, 제주도 도민들은 총파업 투쟁을 벌이며 항의했습니다.
그런데, 총파업 투쟁을 미군정과 경찰은 무력을 진압하였으며, 일부 도민들이 탄압을 피해 제주도로 피신하게 됩니다. 사태는 총선 거부로 이어졌고, 결국 한라산을 무대로 활약한 일부 좌익이 통일정부 수립을 주장하면서 1948년 4월 3일 관공서를 습격하며 봉기합니다. 봉기를 진압하면서 양민 희생이 뒤따르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