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사관은 어디까지 기록하나요
사관은 왕의 일거수 일투족을 기록하는데, 큰일을 볼때 , 잠자기전, 잠자리 상황 등 이런 모든 상황을 기록했었던건가요.????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왕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기록하여 놓은 것이 사관입니다.
그러나 왕의일들을 기록함에 있어 기록자의 정치적 탄압을 우려하여
왕들조차 기록을 보지 않았다고 합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신인재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조선의 사관은 왕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기록했다고 합니다.
모든 것을 기록하고 역사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기록은 실록을 만들때 쓰지 않는 방식으로 실록을 만듭니다.
질문주신 큰일 볼 때 나는 소리는 적지 않았겠죠.
태종 이방원은 사냥을 나가다 말에 떨어진 일이 있었습니다.
너무 부끄러워 따라오던 사관에게 이 일을 적지 말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당일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말에 떨어진 것은 물론 이 일을 적지 말라고 한 것 까지 모두 적었습니다.
이런 역사적 기록들은 조선왕조실록의 정확성을 높여주는 중요한 사례입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사관은 국왕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가서 국왕의 언행 및 행동을 기록했습니다. 이러한 사관의 역할로 인하여 왕과 신하는 은밀히 만나 정사를 의논할 수 없었으며, 열린 정치를 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국왕과 대신들의 부적절한 권력의 남용과 부패를 방지할 수 있었지요.사관은 역사의 서술을 해야 하기 때문에 다양한 지식을 갖춰야 하며, 글을 잘 쓰는 능력이 있어야 했습니다. 또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거짓 없이 그대로 기록해야 하기에 권력 앞에 맞서는 용기도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사관들은 여러 분야에서 능력이 뛰어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직업이었습니다.사관이 직필의 원칙을 얼마나 지켰는지는 태종의 일화에서 알수 있는데 태종은 어느날 사냥을 갔다가 말에서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태종은 아픈곳을 살피기 보다는 주변에 사관에게 절대 알리지 말라고 했다고 하네여. 결국 알게된 사관은 태종이 알리지 말라고 한것 까지 다 기록을 했다고 할 정도로 거짓 없이 기록울 남겼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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