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시대의 편두풍습은 왜 생긴 건가요?
가야시대에는 편두풍습이라고
유아들의 두개골을 의도적으로 변형시키는 풍습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가야에서 편두풍습이 존재했었던 이유가 무엇인가요?
편두풍습은 사회문화적 영향인지, 주술적 샤머니즘적 영향인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편두, 즉 두개골을 변형하는 풍습은 가야에서만 행했던 독특한 풍습이 아닙니다. 선사시대부터 유라시아를 비롯하여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까지 분포 양상이 확인됩니다.
이처럼 선사시대부터 편두는 세계적으로 유행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영남지역에서만 확인됩니다. 편두를 행했 이유는 다양합니다. 황금 관을 쓰기 위해 편두를 하였던지, 훈족의 경우처럼 우월한 지위에 있던 사람들이 계층을 구별하기 위해 실시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야 사람들이 편두를 했던 이유는 성형을 위한 미용적인 목적이나 다른 계통의 사람과의 구분, 주술적인 기능 등 현재로서는 다양하게 추정되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가야시대 편두풍습이 무엇인지 궁금하군요.
가야사람의 풍습에 관한 문헌 기록은 서기 3세기 중국의 진수(233∼297)가 쓴 『삼국지』 위서 동이전이 대표적입니다. 이 중 편두는 가장 극단적인 신체 변형 풍습으로, 1976년부터 부산대학교 박물관에서 조사한 '김해 예안리 유적' 발굴조사를 통해 편두로 변형한 두개골이 확인되었습니다.
편두란 뼈가 성장하는 단계인 유아기 때 나무나 돌, 천 등을 머리에 둘러 두개골을 인공적으로 변형하는 것을 말합니다. '편'의 사전적 의미는 '납작하다'로, 삼국지에서는 '진한 사람의 머리가 모두 납작하다'라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 당시 사관이 주목할 정도 영남지역에서 상당히 유행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편두는 두개골 변형의 일종으로, 예안리 유적의 편두와 같이 돌로 눌러 변형한 납작한 형태나 끈 등을 감아 만든 장두형의 긴 두개골, 후두골 변형 등 세계적으로도 다양하게 확인되고 있습니다. 편두로 보기 위해서는 특이하게 두개골을 변형한 형태도 중요하지만, 일반적인 두개골과 비교하여 인공적인 변형의 흔적이 확인되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가야의 편두는 성형을 위한 미용적인 목적이나 다른 계통의 사람과의 구분, 주술적인 기능 등 다양하게 추정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