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애의 난에 대해서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함경도에서 일어난 이시애의 난은 세조의 집권을 반대하며 이시애가 일으킨 반란이라고 하는데요.
그럼 단종의 복위를 위해 이시애가 반란을 일으킨 건가요?
왜 사육신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건가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시애의 난은 세조 13년(1467)에 함경도 길주군에서 4개월간 지속된 반란입니다. 이 난은 당시 중앙 집권을 강화하고자 북도 출신 수령의 임명을 제한하고 경관으로 대체한 세조의 정책에 대한 반발로 일어났습니다.
세조가 단종을 몰아내고 즉위한 후, 지방민의 이주를 막는 호패법을 강화하고, 지방관을 중앙에서 파견하는 등의 조치로 인해 지방 유지들과 백성들 사이에 불만이 쌓였기 때문에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반란은 관군에 의해 진압되고, 이시애는 여진으로 도망하려다 체포되어 참수되었습니다. 난을 계기로 세조는 북도를 좌우도 나누어 통치하고, 유향소를 폐지하였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시애의 난은 1467년(세조13년) 5월부터 8월까지 함경도 길주의 호족 이시애 등이 세조의 집권 정책에 반대해서 일으킨 반란입니다. 세조는 집권하면서 중앙집권화를 위해서 북도 출신 수령의 임명을 제한하고 경관으로 대체하였으며 수령들에게 지방 유지들의 자치기구인 유향소의 감독을 강화하게 하여 타도 출신의 수령들과 유향소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회령부사로 있다가 상을 당하여 관직에 물러난 이시애는 유향소의 불만과 백성들의 지역감정에 편승해서 아우 시합 매부 이명호 등과 반역을 음모하고 1467년 5월에 반란을 일으킨 것입니다. 그러나 중앙군의 공격에 여의치 않자 여진족까지 끌어들였으나 부하의 배반으로 이시애가 토벌군에 의해 효수됨으로써 막을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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