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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가큰올빼미231
키가큰올빼미23122.12.14

네덜란드는 어떻게 해서 튤립의 나라가 되었나요?

우리가 흔히 튤립 이라고 하면 네덜란드를 떠오르게 됩니다. 풍차가 있는 튤립 사진도 워낙 많이 있기 때문에

기억에 생생히 납니다

왜 튤립은 네덜란드에 상징이 되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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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5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튜울립 나라의 명칭을 얻게된 계기는

    1593년 식물학자에 의하여 도입되어 이후 다양한 색깔 품종 더 아름다운 꽃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네델란드의 주요 수출품목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내덜란드는 풍차의나라 튜울립의 나라로 유명합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네덜란드의 튤립은 중세 오스만제국에 의해 네덜란드이 전해졌는데, 중세 오스만제국의 지도자 술탄 술레이만 1세 는 튤립을 발견하고 감명받게 되죠

    튤립을 지금의 튀르키예로 가져와 심고 꽃이 피면 사람들을 초대해 보여주기도 하여 튤립이 유명해졌으며 제국 권력과 부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16세 중반 술탄 술레이만1세가 오스트리아 빈 대인 오기에르 기슬랭 부스백 에게 튤립을 선물하였고 부스벡은 친구인 캐롤루스 클루시우스에게 튤립을 전달합니다

    당시 클루시우스는 자신이 관리하던 식물원에 튤립을 심었으며 이것이 네덜란드 튤립의 시작입니다


    네덜란드는 다른나라에 비해 봄이 길고 밤이 시원하여 튤립이 자라기 좋은 환경이며 배수작용과 토양이 늘 촉촉하여 튤립이 꽃을 유지하기 좋은 환경입니다



  • 안녕하세요. 박일권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사실 튤립은 중세시대에 오스만 제국에서 네덜란드로 전해진 것입니다.

    원산지는 아니지만 네덜란드에 전해진 튤립은 상류층을 중심으로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직접 재배하기 시작했는데 네덜란드의 기후가

    튤립을 재배하기 최적의 조건이었기 때문에 활발히 재배됐고, 그 인기가 지금까지

    이어져 오면서 네덜란드의 상징이 됐습니다.


  • 안녕하세요. 장상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튤립의 원산지는 파미르고원이라고 하네요.

    그런데 지금의 튀르키예에서 이슬람권 남성의 머리에 쓰는 터번(Turban)처럼 생긴 생김새 때문에

    Tülbend(튈벤드)라고 불렸는데,

    이것이 라틴어 tulipa와 프랑스어 tulipan을 거쳐 영어로는 Tulip이 되었다고 합니다.

    튀르키예사람들이 튤립을 국화(國花)로 정하고 가장 사랑하는 꽃이지만,

    세계 역사 속에 튀르키예가 잘 다루어지지 않았기때문에,

    오히려 튀르키예로부터 가져온 튤립을 네들란드가 상업화한 것만 알려졌죠.

    1593년경 레이던 대학교의 식물학자 카를로스 클루시우스가 네들란드에서 튤립 재배에 성공하고,

    세계 무역의 강자였던 네들란드의 풍부한 자금이 원예나 식물학에 관심을 쏟았고,

    그 배경으로 처음보는 꽃 튤립에 광풍을 일으키고,

    무역상품의 하나가 되죠.

    튤립 구근 하나에 집 한 채의 가격인 경우도 있었다고 하니, 튤립을 네들란드에서 유명하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죠.

    물론 튤립버블이라고 불리는 가격폭락이 이어져, 자본의 이면을 보여주기도 했죠.

    네들란드에서 튤립축제가 매년 열리고 있고, 지금도 90억송이 이상 재배되고 있다고 하니,

    네들란드를 튤립의 나라라고 부를 수 있겠죠.


  • 안녕하세요. 조영민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튜울립하면 네덜란드를 연상할 정도로 그 나라는 튜울립 생산 및 수출의 중심지입니다. 그러나 원래 튤립은 중앙아시아의 파미르 고원에서 야생상태로 자라던 꽃이 터키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을 거쳐서 네덜란드에는 1593년 한 식물학자에 의해 도입되었되고 합니다. 그 이후 다양한 품종과 색깔로 점점 더 아름다운 꽃으로 변해가며 현재는 네덜란드 국가의 주요 수출작물로 많은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답니다. 튤립은 네덜란드의 국화이기도 하지만 유명하게 된이유는 네덜란드의 "튤립투기사건" 때문입니다.

    16세기 후반 서유럽에 튤립이 유입된이후 튤립재배는 네덜란드에서 유행하기 시작합니다. 16세기말17세기에 들어 새로운 지배계층으로 등장한 "레헨트"들은 과거의 귀족들을 대신하여 막대한 부를 배경으로 해외무역과,채권투자에 가담하여 네덜란드는 서유럽의 금융업과 "상업의 메카"로서 자리잡았습니다. 그러나 막대한 부를 창출한 네덜란드에서 튤립의 "다채로운 제배법" 튤립의 둥근 뿌리(구근)가 몇 가지 색이 엇갈린 무늬의 꽃 또는 줄무늬나깃털 모양의 꽃을 피우는 과정(브레이킹)을 거치면서 여러 가지 다른 품종이 만들어집니다.

    브레이킹은 재배 방법과 상관없이 우연의 산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구근 수집가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유행하여 튤립구근의 소비행위가 늘며 튤립은 하나의 인기상품이자 교양,부유함,과시용 으로서 사용되었고 튤립의 가격은 어마어마하게 불어났으나 (튤립1=황소1)당시의 상업적 황금기를 맞은 네덜란드 사람들은 오히려 튤립의 소비를 가속화켜버립니다.

    이러한 사회적 문화에 사람들은 너도나도 돈이되는 튤립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러나 튤립의 공급량이 늘고 유행이 지나 튤립의 가격이 하락하자 네덜란드의 경제는 큰위기를 맞습니다. 훗날 튤립때문에 한나라의 경제가 흔들린 사실은 경제학에서도 쓰이는 하나의 "과도한 투기의 결과"를 상기시키는 사건으로 남아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