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검색 이미지
역사 이미지
역사학문
역사 이미지
역사학문
숭늉한사발
숭늉한사발23.03.14

백제 무왕에 관한 설화는 진실일까요?

백제 무왕에 관한 설화는 어떻게 생겨난 이야기일까요? 한 나라의 왕자가 먼 적국의 수도에서 생활했다는 이야기가 영 신빙성이 없어 보이는데요. 이런 이야기가 전해진 배경도 궁금하구요

55글자 더 채워주세요.
답변의 개수5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3.14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서동은 백제의 왕족이지만 집안이 몰락하여 마를 캐면서 살았기에 맛둥이라고 불렸습니다. 서동은 어느 날 신라 진평왕의 셋째딸 선화공주가 절세미인이라는 소문을 듣고 선화공주와 혼인하기로 결심하지요. 그는 신라에 가서 아이들에게 마를 나누어 주면서 이 불순한 노래(서동요)를 부르게 하여 스캔들을 만들고는, 진평왕의 명령에 의해 쫓겨난 선화공주와 결혼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이후 서동(맛둥)은 금이 귀하다는 소리를 전해듣고 자기가 마를 캐는 곳에 금이 널려 있다는 말을 하여 금을 캐서 부자가되며 금도 얻고 인심도 얻어 백제의 왕이 되고, 이후 선화공주와 함께 유명한 백제 사찰인 미륵사를 창건했다는 설화의 내용입니다.

    《고려사》및 《세종실록지리지》에는 "말통대왕"이란 명칭으로도 나오는데, 이는 바로 "맛둥" 정도의 어휘를 적은 것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서동요의 부여장은 부여선(법왕)의 아들이 맞습니다.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이죠.위덕왕사후 혜왕, 법왕이 각각 등극하여 2년을 못 넘기고 죽어서 법왕의 아들이 등극하여 40년을 왕위에 있게되는데 그게 바로 무왕이죠. 거대한 미륵사를 창건한 것도 무왕 재위 중의 일이었음이 확인되고 정사인 삼국사기의 내용이니 가장 신빙성이 있다고보고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무왕 탄생 설화와 용신 신앙의 근원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는 서동설화로 백제 무왕의 어머니가 용과 관계하여 무왕을 낳았으며,

    선화공주와 사랑을 하게 되고 민심을 얻어 왕위에 오르게 된다는 줄거리를 담고 있습니다.

    용과 관계해서 무왕을 낳았다는 것 자체가 문학적인 표현에서 나오는 발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서동이라는 인물의 비범성은 어디에서 유래하는 것인가? 그 설명은 결국 그의 신기한 탄생으로만 설명되는 것이며, 이의 기반에 놓이는 것이 용신(龍神)과의 관련이다. ‘재주와 도량이 커서 헤아리기 어려운’ 뛰어난 서동의 출현은 바로 그가 용신의 후예라는 점에서만 설명이 가능하다. 용신의 후예로서 뛰어난 능력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감히 선화공주와 결혼할 생각을 하고, 그것을 성취하였으며,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용신은 기본적으로 하늘의 비상(飛翔)과 관련되는 존재이다. 비상과 관련된다는 점에서는 건국 신화의 주체들이 난생(卵生)에서 연유함으로써 하늘과 관련되는 것과 동일한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난생은 새(鳥)의 변형이요, 새는 하늘의 변형이다. 새는 동물이지만 알은 새와 인간을 연결시키는 중간자 구실을 하고 있다. 새가 하늘과 관련을 맺는 것이 그 비상의 힘에 있는 것처럼, 용도 그 비상의 힘 때문에 필연적으로 하늘과 관련을 맺는 것이다. 고려 시조 신화가 용신과 관련을 맺는 것이나, 조선 왕조의 건국 신화에 해당할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가 그 주체를 용신(龍神)으로 설정한 것도 바로 그 후예들이 하늘과 직접 관련을 맺는 선택된 천신족(天神族)의 후예임을 드러내기 위해서인 것이다.

    이처럼 용신은 기본적으로 하늘과 관련되는 존재이다. 하늘과 관련되는 존재의 거처가 ‘못’으로 설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 ‘못’은 범연한 장소가 아니다. 이것이 서동을 인간 세계에 보낸 용신의 정체에 대한 올바른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되었을 때, ‘못 가에 홀로 사는 여인’으로 설정된 서동의 모계(母系)의 정체에 대한 실마리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즉 ‘홀로 사는’ 여인인 서동의 모계는 사실은 ‘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용신을 모시고 숭앙하는 사제(司祭)로서의 의미를 갖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합은 천신(天神)과 지모(地母)의 결합인 신성혼(神聖婚)의 정형을 간직한 것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서동은 용신의 의지를 세속에 드러내기 위하여 탄생한 신기한 인물이다. 그리고 그 의지는 왕위에 오르는 것으로 일차적인 달성을 보였다. 그러나 여기에서 왕위에 오르는 것은 당대의 것 만으로 한정되지는 않는다. 용신의 의지는 그 후대의 왕들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전승되기 때문이다. 요컨대 용신의 후예라는 사실은 그 후대의 왕들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확인되고, 자신들의 자부심의 근원으로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고려의 왕들이 지속적으로 자신들을 용신의 후예라고 생각하거나, 또는 생각했을 것이라고 믿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의식의 소산이다. 이 이야기가 백제 또는 적어도 백제 지역에 존재했던 어떤 왕조의 신화로 인식될 수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용신의 후예임을 드러내는 이러한 사실을 통하여 우리는 무왕 탄생설화가 백제 의식의 근원적 이야기로 정착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용신설화 (문화원형백과 백제금동대향로, 2005., 문화원형 디지털콘텐츠)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서동 설화는 신화제의적 측면에서 접근하여 마한계의 수부지모영신화로 보는 견해와 성년식의 통과제의로 보는 견해가 있으며, 민중적 영웅의 일생담, 사찰 연기설화, 양자가 복합된 설화로 분류됩니다.

    서동 설화는 용자로 태어나 고난을 극복하고 왕위에 오른다는 영웅설화의 공식적인 과정을 밟으며, 삽입된 서동요는 이러한 성공의 열쇠 구실을 하며 재기발랄하고 야심많은 젊은이가 몽환적인 사랑을 재치와 기지로 현실화 시키는 한 영웅의 일대기 가운데 차지하는 애피소드이며, 이 설화에서 우리는 영웅 설화의 원형을 찾을수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백제 무왕 전설의 역사적 정확성을 판단할 결정적인 증거는 없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무왕은 동물과 새와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고, 이는 그가 성공적인 군사 작전을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는 또한 예술과 문학의 위대한 후원자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부 역사가들은 무왕에 대한 이야기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과장되거나 조작되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전설을 둘러싼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무왕은 여전히 ​​한국 문화에서 용기와 리더십의 상징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설화는 사실과 전혀 무관합니다. 설화는 그냥 왕을 신성시하고 숭배하게 만드는 하나의 도구 일 뿐입니다.

    사이비 교주가 교주가 될려면 신비성이 있어야 하고 뭔가 말은 안되지만 그럴 듯하게 꾸며내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무왕이야기는 백제의 무왕과 신라의 진평왕과 관련되므로, 이야기의 배경은 삼국의 쟁패기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야기가 형성된 시기는 신라와 백제가 병합된 통일 이후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