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구에 대한 기록은 언제까지 있는가요?
격구는 말을 타면서 채를 이용해 공을 치는 놀이인데요. 페르시아에서 시작하여 당나라를 거쳐 7세기경 우리나라에 들어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격구에 대한 기록은 언제가 마지막인가요?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격구의 기록이 언제까지 있는 것인지가 궁금한 것 같습니다.
격구 경기는 1629년 인조가 모화관에서 본 것이 마지막이었다(『인조실록』 7년 8월)는 내용이 있다고 합니다.
조선왕조의 태조도 격구 명인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우리 수준은 중국의 황제도 놀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세종 임금이 격구를 과거 시험 과목으로 삼은 것도, 그의 위대성을 알려주는 좋은 보기입니다. 더구나 그는 옹졸한 신하들의 반대에 끝까지 물러서지 않았다고 합니다.
조선왕조의 융성기가 지나는 16세기 중반에 이미 격구가 시들해지더니, 18세기 후반에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고 합니다. 이에 관한 책을 쓰려고 사람을 찾았으나, 아는 이가 없었다는 것입니다.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격구는 폴로와 비슷한 경기로 페르시아에서 당나라로 전래되어 고구려, 신라에 전해졌습니다. 고려시대는 국가적인 행사로 행해졌습니가. 그리고 조선시대에도 무과 과목과 무예로 존중되었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말 없이 즐기는 보행 격구 형태로 장치기 등의 민간놀이로 발전했습니다. 근대로 들어오면서 격구는 거의 사라졌습니다. 다만 오늘날 한민족전통마상무예격구협회가 조직되어 격구 전통을 계승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중요한 무예의 하나로 여겨서 정기적인 군대 열병식에서는 반드시 이를 실시하였고, 또한 무과시험 과목에까지 포함시켰다고 합니다. 이 놀이는 경기장에 좌우편 선수들이 줄지어선 가운데 한 사람이 들어가 공을 공중으로 쳐올리는 것으로 시작되며, 선수들은 제각기 말을 타고 달려나와 공을 빼앗아 가지고 상대방 문전을 향해 공채로 몰고 가는것인데 격구는 구문(毬門)을 세우고 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것이 없이도 즐길 수 있다고 합니다.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에 마지막으로 기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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