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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문어80
조용한문어8023.08.11

경빈 박씨가 중종의 후궁이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가요?

경빈 박씨의 집안은 다른 후궁들의 집안들과는 다르게 상주지역의 평범한 양반집 집안 딸이라고 하는데요.

어떻게 중종의 후궁이 될 수 있었던 건가요?

당시 반정을 주도했던 신하들과 어떤 특별한 관계가 있었던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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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제11대 국왕 중종(中宗) 후궁이다. 중종의 서장자(庶長子) 복성군(福城君) 이미(李嵋)를 낳았고, ‘작서(灼鼠)의 변’으로 사사(賜死)되었다. 본관은 순천(順天), 아버지는 박수림(朴秀林)이다. 박수림은 상주(尙州)의 사족이긴 하지만 매우 한미(寒微)하여 정병(正兵)이었을 정도로 집안이 궁핍하였다. 경빈박씨는 1505년(연산군 11) ‘채홍(採紅)’으로 뽑혀 입궐하게 되었다. 연산군은 전국의 미녀들을 ‘채홍’한다고 하여 채홍사(採紅使)를 통해 뽑아 오도록 하였고, 경빈박씨도 출중한 미모로 인해 이때 선발되었다.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중종반정(中宗反正)이 일어났고, 그녀의 미모가 반정의 제일공신 박원종(朴元宗)에게 알려져서 후궁으로 추천되어 내명부 종2품 숙의(淑儀)의 품계를 받았다. 중종은 반정 직후 공신들에 의해 부인 신씨(단경왕후)를 폐위하였고, 1507년(중종 2) 간택한 숙의 중 파평윤씨 윤여필(尹汝弼)의 딸을 왕비로 책봉하였다. 이분이 장경왕후(章敬王后)이다. 경빈박씨는 1509년(중종 4) 중종의 첫 자녀로 복성군을 출산하였고, 이후 혜순옹주(惠順翁主)와 혜정옹주(惠靜翁主)를 낳았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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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경빈 박씨 집안과 다른 중종 반정 관료들과 친분이 있었던 것 가지는 않고 중종 실록에 따르면 상주 지방의 사족 박수림(朴秀林)의 딸로 연산군 11년(1505) 채홍사 때문에 미색이 알려졌고 그래서 이듬해(1506) 중종 반정이 일어난 뒤 궁중에 들어와서 중종에게 총애를 받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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