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의삼전도의 굴욕이란 어떤것이었나요.?
조선시대 인조때 청나라에 의해서 조선의 왕인 인조가 당한 삼전도의 굴욕이란 어떤것인가요? 인조는 왜 남한산성에서 삼전도의 굴욕을 당하였나요?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전도의 굴욕은 병자호란 당시 조선의 왕인 인조가 청 태종 앞에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리는 삼궤구고두례를 하며 항복한 사건입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637년 2월 24일 청나라가 병자호란을 일으키고 한양으로 빠르게 남하하자 조선의 왕 인조는 강화도로 피신하려하나 청군이 길을 막아 강화도로 갈수 없게 되었고 이에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들어가 항전합니다.
그러나 성내의 물자가 떨어지자 끝내 청나라와 치욕스러운 강화를 맺으니 이를 삼전도의 굴욕이라 합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636년 병자호란 때 조선 인조는 강화도로 미처 도피하지 못하고 남한산성으로 피신하게 됩니다. 청군들은 무섭도록 빠른 속도로 공격해왔으며 삼남직방의 지원군들은 남한산성으로 오는 과정에서 전멸을 당하게 됩니다. 남한산성에서 40여일을 버티다가 지원군도 기대할 수 없고 강화도로 피신한 왕실가족들이 붙잡혔다는 소식을 접하고 삼전도로 나와 청 태종 앞에서 삼배구고두의 치욕을 당하게 됩니다. 이를 삼전도 굴욕이라고 하는데 3번 무릎꿇고 9번 머리를 조아린다는 예법입니다. 조선의 왕이 오랑캐인 여진족 앞에서 무릎꿇고 머리를 조아리는 수치를 당한 것입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병자호란 당시 한강과 탄천이 합류하는 한강 상류 지역인 서울특별시 송파구 삼전동에 소재했던 나루터인 삼전도에서 인조가 청 태종(홍타이지)에게 항복을 한 사건입니다. 남한산성에 고립되었던 인조(1623~1649)와 대신들은 45일 만에 청나라에 항복했습니다. 남한산성에서 내려온 인조는 삼전도에서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를 행하면서 굴욕적인 패배를 인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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