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대원군의 통상수교 거부 정책은 서양 열강의 침략을 일시적으로 저지할수 있었으나 변화하는 세계 정세에 주체적으로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신미양요는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다는 측면에서는 승리였으나 군사적으로는 참패한 전쟁이었습니다.
1866년 만든 척화비를 1871년 전국적으로 세운 것은 위기의식의 발로였으니 병인양요에서는 승리해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질수있었으나 신미양요는 그렇지 못했다는 의미로, 신미양요 이후 오경석 등의 개항가가 출현하는 계기가 됩니다.
흥선대원군은 서양의 침략을 자신의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려는데 활용, 화이관에 입각한 강경한 배외적 태도를 취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세계 정세에 대한 객관적 인식을 어렵게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