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로 인해 우리나라 사회에 큰 변화들이 생겼다는데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요?
1968년에 일어난 121사태(김신조 사건)는 청와대 습격을 목적으로 무장공비들이 침투한 사건인데 이 사건의 결과로 우리나라 사회는 많은 변화가 있엇다고 하더군요.
대표적으로 121사태의 영향으로 우리나라에 바뀐 제도들은 무엇이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이상훈 전문가입니다.
무장 게릴라 31명이 청와대를 기습하여 28명이 사살되고 체포된 김신조가 "김정희의 목을 따러 왔다."라고 진술하자 한국사회는 충격에 빠졌습니다. 남한 정부는 북한의 기습적인 게릴라전에 대비하기위해 향토예비군의 창설을 서두르게 되었습니다. 또한 전 사회적으로 대공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져 전국 각 학급에는 대공 만화나 서적들이 비치되었고 간첩 신고율또한 높아졌습니다.
1968년 1월 21일 북한의 김신조를 비롯한 특수부대가 청와대를 습격하려다 실패한 사건, 1.21사태가 일어났습니다.
이 사태를 계기로 정부는 안보 태세를 강화했습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국가 안보 우선주의'를 선포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예비군 창설, 육군 3사관학교 설립, 굘녀 교육이 실시되었으며, 전투 경찰이 창설되었습니다. 또한 보복부대인 684부대를 창설하였습니다. 그리고 전국민 주민등록증 제도를 시행했습니다.
박정희 정부는 반공과 경제 개발을 이유로 정권을 유지했는데, 1,21 사태와 이후 푸에풀리호 사건, 그리고 같은 울진,삼척 무장 공비 사건이 일어나자 반공의 설득력이 약화되었으며, 이를 위해 3선 개헌을 추진하여 정권 연장의 이유가 되기도 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조유성 전문가입니다.
✅️ 1.21 사태의 영향으로 우리나라에 향토예비군과 방위병이 창설, 운영되기 시작했고 주민등록증의 발급, 5분 대기조(소위 군대의 5대기)를 도입하는 등 무장공비 침투를 막기 위한 일련의 제도가 시행, 운영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