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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5.07

피사의 사탑이 지닌 가치와 영향

안녕하세요.


피사의 사탑이 만들어진 계기는 무엇이며


이것이 지닌 문화적 가치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피사의 사탑이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은 뭐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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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피사대성당 동쪽에 있다. 흰 대리석으로 된 둥근 원통형 8층 탑으로 최대 높이는 58.36m이며 무게는 1만 4453t으로 추정된다. 2008년 현재 기울기의 각도는 중심축으로부터 약 5.5˚이다. 294개의 나선형 계단으로 꼭대기까지 연결됩니다.

    1173년 착공되어 1372년까지 3차례에 걸쳐 약 200년 동안 공사가 진행되었는데, 1173년에서 1178년 사이에 진행된 1차 공사 이후 지반 토질의 불균형으로 인한 기울어짐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뒤 2차 공사에서 이를 수정하여 다시 건설하였으나 기우는 현상은 계속되었습니다. 1990년 이탈리아 정부는 경사각을 수정하기 위한 보수공사를 착수하여 10년에 걸쳐 보수작업을 진행한 결과로 기울어짐 현상은 5.5˚에서 멈춘 상태입니다. 2001년 6월 일반에 다시 공개하였으나 보존을 위해 입장객의 수를 제한하고 있습니다.

    갈릴레이는 이곳에서 무게가 다른 두개의 공(1파운드, 10파운드)을 떨어뜨리는 낙하실험을 통해 지표면 위의 같은 높이에서 자유낙하하는 모든 물체는 질량과 무관하게 동시에 떨어진다는 낙체법칙을 실험적으로 증명하였다는 일화가 전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이 실험은 1586년 네덜란드의 수학자·물리학자인 시몬 스테빈이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피사의 사탑 [Leaning Tower of Pisa]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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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굉장한비오리121
    굉장한비오리12123.05.08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탑이 기울었다하니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피사의 사탑"이다. 이 사탑은 전 세계에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예술적 가치가 더 높은 작품이 수두룩할 진데, 유독 이 탑이 유명한 이유는 금방 쓰러질 듯 삐딱하게 서있어 동정심과 호기심을 계속 유발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탑에서 갈릴레오가 물체의 자유낙하 실험을 한 곳이라는 일화도 갖고 있고,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지목되어 있기도 하다.

    피사의 사탑은 8층이고 높이 56m, 직경 15m, 무게 14,500톤으로 약 200년에 걸쳐 완공됐고, 완공 후 800년 동안 조금씩 기울어 1990년에는 붕괴 직전까지 이르렀다. 공학적 측면에서 보면 이 구조물은 완전 실패작이다. 이런 불량 구조물임에도 불구하고 세간의 호기심과 상술이 기술자들을 부추겨 국제적인 콘소시움을 구성하고 막대한 예산과 인력을 투입해 붕괴를 막는다고 난리를 피웠다. 초기 설치부터 복구까지의 과정을 짚어보면 재미있는 사실들이 많이 발견된다.

    지금으로부터 829년 전, 탑 착공 시점인 1173년 9월로 되돌아가 보자. 피사는 그 당시 이탈리아의 도시국가 중 가장 강력하였다고 한다. 부유한 상인들이 피사에 "기적의 광장"을 건설하고 있었는데 그 건축물 중 하나가 바로 이 종탑(Bell Tower)이었다. 원초적인 문제의 발단은 점토와 모래로 형성된 연약한 충적토 위에 종탑을 세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공사가 3층까지 진행되자 탑이 기울기 시작했다. 지반약화로 인한 부등침하 현상이 나타나며 북쪽으로 기운 것인데, 건축가들은 북쪽 기둥과 아치를 남쪽보다 조금 높게 세워 똑바로 보이도록 잔머리를 썼다. 정답은 그 당시 탑을 즉각 해체하고 지반을 충분히 다진 후 재공사를 하거나, 아니면 다른 위치로 옮겨 세웠어야 했다. 실수를 인정하기 싫어하는 자존심 강한 건축가들은 얕은 수와 임시 편법으로만 해결하려 했던 것이다. 만약 공사를 다시 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세간의 재미거리 하나가 없어졌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1178년 4층을 올리기 전에 피렌체 전쟁으로 탑 쌓기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약 100년이 흐른 뒤인 1272년 재개되었다. 이 번에는 심사숙고 끝에 우선 탑 밑의 지반을 다지는 공사부터 시작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반대편 남쪽으로 기울기 시작하는 것 아닌가? 실제로 지반 구조는 남쪽이 상대적으로 부드러웠던 것이다. 그러자 건축가들은 4층부터는 남쪽의 기둥과 아치를 더 높게 세웠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을 계속 임시방편으로만 해결하려했던 것이다. 결국 문제점을 안고도 밀어붙여 1278년 7층까지 쌓아올렸다. 탑은 이미 1도나 기울었고 중심에서 0.8m 벗어난 상태였다. 그러다 다시 전쟁으로 공사가 80여 년 동안 중단되었다. 1360년경 새로운 건축가들이 나서서 8층에 마지막 종루를 쌓을 때도 탑은 계속 남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이번에도 선배들이 썼던 꽁수를 그대로 써먹었다. 기울기를 바로 잡는다고 남쪽에 계단을 6단 추가하는 임기응변을 또 부린 것이다. 이 대목에서는 같은 공학도로서 의아심과 함께 결말이 어찌 날까 은근히 호기심이 발동하기도 한다.

    1370년 경, 결국 1.4m가 기운 삐딱한 탑을 준공했다. 엔지니어의 옹고집이 극치를 보여주는 결과다. 틀림없이 그 당시 적절한 정당성을 내세웠을 것이다. 공학의 경우는 계산서와 분석 결과를 들이밀면 누가 딱히 반박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1.6도의 기울기는 무시할 수 있고 눈에도 잘 띄지 않았을 터이니, 아마 기술자들은 분석 결과를 내 보이며 "앞으로 더 기울지도 않고,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라고 정당성을 내세웠지 않았을까? 이 탑은 완공 후 5세기에 걸쳐 매년 평균 1.12mm씩 남쪽으로 조금씩 기울어 탑 아랫부분이 지하 3m까지 내려앉았다. 이 때는 이미 기울기가 5도나 됐고, 탑 상단은 수직선상에서 바깥쪽으로 4.5m나 튀어나와 보는 사람마다 두 손으로 받히고 싶은 마음이 들게끔 불안한 모습이 됐다. 아랫단 회랑 부분이 흙에 묻히자 1838년 탑 밑동을 파냈다. 문제가 부등침하라 조금이라도 하중에 영향을 주는 행위는 신중히 했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만 일을 저지르고 만 것이다. 탑이 갑자기 0.5도나 더 기울었다. 그 이후 뜨거운 감자가 돼버린 사탑은 누가 감히 손 델 엄두를 못 내고 방치하게 되었다.

    거의 100년이 지난 1934년 무소리니 시대에 새로운 기술자들이 나섰다. 지반을 강화해 더 기우는 것을 막는답시고 지하 기초에 361개의 구멍을 뚫고 콘크리트 80톤을 쏟아 부었다. 그러나 결과는 남쪽으로 더 기울게 하고 말았다. 가만히 놔두기나 하지 또 악수를 둔 것이다. 1990년 정밀측정에서 북쪽은 21cm 가라앉은 반면 남쪽은 두 배가 넘는 43cm나 내려앉은 것으로 판명 났다. 5.5도나 기운 것이다. 이탈리아는 다급해졌다. 중요한 관광자원 하나가 사라질 판이니 더럭 겁이나 즉시 관광객의 출입을 전면 통제하고, 대책을 강구하는 전문위원회를 구성하게되었다. 위원회는 전 세계에서 14명의 내노라는 전문가를 초빙하고, 이탈리아 총리에게 직접 보고하는 체제를 갖추어 본격 복구작업에 돌입했다. 직접 보지 않아도 14명의 전문가들이 얼마나 격론을 벌였을까는 상상이 가고도 남는다. 과학자란 자존심과 고집을 빼면 자신의 존재 가치가 없다고 여기는 부류니까. 이 사업을 시작하기 전 컴퓨터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이 탑은 이미 무너졌어야 할 정도로 위험했다고 한다. 더군다나 1989년 피사 근처 파비오에 있는 800년 된 탑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돌발사고도 있었기에 더욱 조급해졌던 것이다.

    복구공사의 목표가 아주 흥미롭다. "무너지지 않을 정도만 세운다" 즉, 0.5도만 세워 300년 전 기울기로 한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 공학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거래다. 완벽한 복구와 공학자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라도 똑바로 세워야 하는데 사탑의 명목을 지키고 관광객의 호기심도 유지하려는 목적으로 쓰러지지 않을 정도로만 삐딱한 채로 마무리한다는 협상을 한 것이다. 건축할 당시부터 기울었던 탑을 똑바로 세운다는 것은 문화재 훼손이라는 말도 안 되는 명분을 내세웠다. 피사의 사탑은 기운 상태로 있어야만 비로소 존재의 의미가 있다고 합의를 본 것이다.

    새로 구성된 전문위원회에서 고심 끝에 제시한 복구 대책은 참으로 간단한 것이었다. 사탑 중간에 강철선을 붙들어매 멀리 고정시켜 더 쓰러지지 않게 해놓고는, 북쪽에 납덩어리를 쌓아 지반을 내리 누른다는 방안이다. 컴퓨터 시뮤레이션을 하고 뭔가 무지하게 복잡한 계산을 했을 것이다. 3년이 지난 1993년에야 660톤의 납덩어리를 올려놓았다. 다행히 사탑은 북쪽으로 조금 돌아왔다. 그러나 몰골이 얼마나 흉측스러웠겠는가. 탑 허리춤에 강철선을 붙들어 매놓지 않았나, 볼품 사납게 납덩어리를 쌓아놓지 않았나. 당장 아름다운 예술품을 흉측스런 괴물로 만들었다고 세간의 비난이 빗발쳤다. 미관을 생각지 않는 공학도의 문제 해결방식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위원회는 다시 머리를 싸매고 논란을 거듭한 끝에, 1995년 두 번째로 제시한 대안은 그래도 공학적이다. 탑 기초부위에 콘크리트 링을 두르고 그 링에 10개의 케이블을 달아 지하 45m 깊이의 다진 모래바닥에 고정한다는 것이다. 뭔가 복잡하고 공학적인 게 있는 것 같이 그럴싸하다. 그런데 굴착작업을 하는 도중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기초주위에서 이미 160년 전에 타설된 콘크리트가 발견된 것이었다. 이 콘크리트를 제거하는 도중 탑에 연결되어있던 쇠파이프가 잘리면서 그 충격으로 탑이 1.5mm나 기울어 버렸다. 무소리니 시절에 설치된 기초 콘크리트와 여기에 연결된 쇠파이프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심각한 문제로 기록불량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한 사례다.

    1.5mm는 일년에 걸쳐 기울 수치인데 하루밤 새에 까먹은 것이다. 더럭 겁이난 기술자들은 부랴부랴 300톤의 납덩어리를 북쪽에 더 얹었다. 혹 때려다 혹 붙인 격이다. 결국 이 계획은 상처만 남기고 수포로 돌아갔다.

    모처럼 공학적인 해결책을 갖고 접근하려던 기술자들은 의기소침해졌다. 또 다시 머리를 싸매고 찾은 방안은 상대적으로 올라간 북쪽 지반의 흙을 긁어내 가라앉히자는 것이었다. 납덩어리로 내리누르던 것을 흙 파내기로 전환한 것이다. 사탑을 붙들어 맨 강철선은 그대로 둔 채, 지반 굴착작업을 시작했다. 직경 20cm로 12개의 구멍을 비스듬히 뚫어 북쪽의 흙을 파내기로 한 것이다.

    1999년 2월에 시작한 굴착작업은 기술자들에게는 피를 말리는 작업이었다. 기초를 건드린다는 것이 얼마나 큰 모험인가? 잘못하다가는 탑이 폭삭 무너져 내릴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감수하고 강행한 것이다. 굴착공사 초반에 사탑이 또 기울고 있다는 긴급 팩스를 받고 책임자는 사표를 쓸 작정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정보를 분석한 결과, 원인은 알프스에서 불어오는 강풍이었다. 바람이 불면 기온이 떨어지고 그로 인해 사탑은 남쪽으로 더 기운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바람이 멈추고 기온이 올라가자 탑은 다시 북쪽으로 되돌아갔다. 참으로 민감한 애물단지다. 지반뿐 아니라 기온, 바람까지 영향을 미치다니.

    다행히 흙 파내기 작전은 효과를 보며 2001년 6월까지 계속됐다. 탑의 기울기를 19세기 초 수준(4.1m)으로 되돌려 놓은 상태에서 흙 파내기는 중지됐고, 이는 11년 만에 거둔 대성공이었다. 결국 흙 파내기가 가장 알맞은 공법으로 확인된 것이다. 객관적으로 보면 이 방법은 삼척동자라도 생각해 낼만큼 간단한 것이 아니던가? 기운걸 바로 잡으려면 내려앉은 쪽에 흙을 되 메우던지, 아니면 올라간 쪽의 흙을 파내는 방법밖에 없다. 기상천외한 방법만 찾으려는 엔지니어의 복잡한 머리 굴리기로 그 동안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것이다. 14500톤의 돌탑을 들어올리고 흙을 메울 수는 없는 일이지 않은가? 당연히 파내는 방법 밖에 없는 데, 이 간단한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3500만 달러(약 455억원)가 넘는 돈이 투입했고, 수많은 기술인력과 10여 년의 세월이 소비됐던 것이다. 물론 이런 황당한 일들 때문에 기술자들이 먹고산다고 볼 수 있겠지만.

    흉물스런 납덩이는 제거됐고, 탑 허리를 졸라매고 있던 강철선도 제거됐다. 2001년 6월에 다시 개방된 사탑을 관광객들이 오르내리며 감탄사를 연발한다. "이렇게 기울었는데도 왜 안 쓰러지고 있지? 신기하다, 기적이야!" 상술과 결탁한 과학자들의 작전에 말려들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300년은 안전하다는 주장인데, 아마 과학자와 전문가들 사이에는 피사의 사탑이 왜 쓰러지지 않고 있는지, 또 앞으로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인지를 놓고 끊임없는 논란을 벌일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관광객들은 공학적으로는 실패작인 이 사탑을 5배나 오른 입장료에도 불구하고 불가사의라며 계속 몰려올 것이다. 과학자들이 인간의 호기심, 상술과 협상해 불완전 작품으로 얼버무렸으나 누구 하나 탓하는 사람이 없다. 오히려 성공적인 사례로 인식되어 대대적인 기념 행사도 치렀다.

    엔지니어는 계산기에서 나온 결과만을 정답으로 인정하려 하나, 경우에 따라서는 여건과 이용자에 따라 적당한 합의점을 찾는 협상도 할 줄 알아야 한다. 사탑의 복구 과정을 보노라면 우리 공학도가 철두철미 지키려는 원칙만이 꼭 정답은 아니며, 타협과 모험, 행운이 공존하여야 모두 만족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현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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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 탑은 건축학에 큰 공헌을 했다. 건물을 공사할 때 지반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 것이다. 이 탑으로 인하여 이후 고층 빌딩을 짓게 되면 위로 올라가는 높이 못지 않게 아래로 파내려서 지반을 견고하게 하는 작업이 추가되어 빌딩이 쓰러지는 것을 막게 되었다. 20층 이상의 빌딩들이 지하 5층 정도까지는 기본적으로 내려가는 게 다 이유가 있다.

    -출처: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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