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명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 작품은 우리의 재래적 토속신앙인 무속(巫俗)의 세계가 변화의 충격 앞에서 쓰러져 가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무녀도」라는 그림에 담긴 한 무녀의 사연의 풀이로 제시된 이 작품은, 모든 것이 변해 가는 소용돌이 속에서 소멸해 가는 것의 마지막 남은 빛에 매달려, 이를 지키려는 비극적인 인간의 한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전체의 구성은 김동리 소설에서 흔히 보이는 액자구조로서, 이야기 속에 또 하나의 이야기가 담겨져, 이중(二重)의 허구화현상(虛構化現象), 즉 내부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 유발과 그것의 인증기능(認證機能)을 하고 있다. 한편, 내부 이야기도 모화와 욱이의 극적인 갈등이 중심을 이루면서 발단-전개-절정-대단원의 견고한 짜임을 보여준다.
발단에서는 퇴락한 집과 ‘사람냄새’의 대비, 인물들의 서로 다른 방언의 대비, 무속과 기독교적 신관의 차이 등을 통하여 이미 이야기 전체의 기본적 갈등을 전제하고 있다. 그리고 나서 모화와 욱이의 상호 거부 대립이라는 외적 갈등이 점진적으로 전개되며, 마침내 욱이의 죽음을 부르는 갈등으로 발전, 절정을 이룬다. 그 뒤 쇠퇴해 가는 모화의 자기 세계를 되찾으려는 마지막 굿과 죽음이 비극적인 대단원을 이룬다.
여기에서 모화의 죽음과 패배는 기독교의 승리로 볼 수도 있으나, 그러한 승패보다는 도도한 역사의 변화 앞에서 이에 맞서고 겨루어보려 한, 한 인간의 마지막 모습을 비극적으로 제시한 것에 이 작품의 의미가 있다. 「무녀도」의 그림이 전제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역사적인 시간을 초극함으로써 오히려 인간적인 삶의 보편성을 암시하려는 작가의 세계관이 천명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