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도 치과 전문의가 있었을까요? 별도 치과의원은 없었나요?
예전에 조선시대의 말전문 수의사에 대해 다른 조승우 주연의 마의라는 사극도 있었듯이
조선시대에도 가축 등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수의사도 있었고,
실존인물은 아니겠지만, 정신전문의에 대해 다른 유세풍이란 사극드라마도 있었습니다.
현대에도 의과와 치의과를 별도로 구분하고 있는데
조선시대에 요즘보다 특히 치통,치충으로 곤란을 많이 겪었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별도의 치과 전문의는 없었을까요?
그리고 조선시대를 포함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치과전문의가 누구였는지도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따뜻한말32입니다.
일단 조선시대에는 충치때문에 고생하는 경우가 무척 드물었다. 그도 그렇것이 우리나라에 '설탕'이 소개되기 훨씬 이전이었고, 그나마 중국에서 들여온 설탕은 높은 신분의 사람들이 '약처럼' 먹었다고 하니 충치로 고생한 비율은 정말 작았다. 다만 나이가 들면서 풍치가 생겨 이가 빠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일. 그야말로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라는 말을 몸소 실천하며 살 도리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옛날엔 이가 아프면 참을 때까지 참다가 최후의 수단으로 뽑으면서 살았단다. 최근 가능한한 이를 뽑지 않고 생활하려고 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현상.
우리나라에 '치과진료'가 소개된 것은 조선 말기. 현재 남아 있는 기록인 순종황제 장례식 사진에서 이 사실을 알 수 있다. 장례행렬 뒷편으로 치과 간판 '이해박난집'을 확인할 수 있는 것. 이것만 봐도 치과는 이를 뽑는 데가 아니라 보조적인 치아를 넣어주는 곳이라는 '치과'의 기본취지를 알 수 있다. 그 당시엔 치과 진료를 위해서 이를 갈아야 할 때 발로 페달을 밟아야 했다니 의사나 환자 모두에게 간단치 않은 진료였을 것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