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쓴 글인데 이 정도면 독창적인 시각인가요? 너무 고민이 됩니다.

"내가 생각할 때 사람들이 패션에 신경쓰는 이유는 남들의 시선을 신경쓰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남들의 시선을 신경쓰지도 않는다. 따라서 당연히 패션에 관심이 없다고 할 수 있다. 패션에 관심이 있다는 것은 부정적인 일이다. 내가 생각하는 패션에 대한 관심의 적정도는 딱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 '저 사람 혹시 거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이다. 그냥 캐주얼하게 청바지에 자켓, 그리고 티셔츠 입고 다녀도 누구 하나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 가끔 냄새가 나지 않도록 빨래를 자주 해주면 더욱 좋다. 최소한 나는 이 정도는 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자신의 인생을 발전시키는데 노력을 기울이면 된다. 그런데 가끔씩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을 발전시키는 노력을 들이는 대신 패션이나 유행을 따라 하는데 노력을 들인다. 그런 사람들은 반드시 실패하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노력의 방향성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내가 이 옷을 입으면 남들이 나를 좋게 생각하겠지?'뿐이다. 자기 만족을 위해서 옷을 입는 사람은 오히려 멋진 사람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자기만의 세계를 남들에게 적용하려고 시도하거나 누군가에게 자기만의 규범을 강요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만족을 위해서 예쁜 옷을 입는 사람은 단순히 '패션이 좋다.'에서 그친다. '패션이 중요하다. 따라서 모든 사람들은 패션에 관심을 가지고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은 솔직히 말하자면 이드의 욕구를 초자아가 억압하려는 과정에서 생겨난 자기합리화일 뿐이다. 이드는 '난 패션이 좋아 예쁜 옷을 입고 싶고 나를 가꾸고 싶어'라며 순수하게 접근하는데, 초자아는 '패션에 관심을 가지면 안돼, 패션에 신경쓰는 건 안 좋은 일이야 그럴 시간에 너는 다른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해'라며 도덕적으로 접근한다. 둘 사이의 충돌이 일어나면서 결국 '모든 사람들은 패션에 관심을 가져야 해'라는 사고가 작동한다. 다시 말해 모든 사람들이 자신처럼 패션에 관심을 가진다면 초자아의 도덕적 죄책감을 벗어나 이드의 욕구를 얼마든지 충족시킬 수 있는 상태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상태에서는 초자아가 '안 돼'라며 갖은 설명을 늘어놓아도 '뭐 어 때? 어차피 모든 사람들은 다 패션에 관심을 갖는데?'라고 반문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패션을 강요하는 사람들이 프로이트적 관점에서 이드와 초자아의 갈등 상황에 놓여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2개의 답변이 있어요!

  • 글 초반엔 자기의 입장 

    후반부로 갈수록 특정학문을 공부하지않고 처음접한다면 이해가 어려운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독창적인 시각으로 생각되진 않습니다

  • 패션을 바라보는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다른 독착적인 시선을 의도 하신거라면 충분히 참신하고 재미있는 캐릭터로 보여집니다.

    남들하면 다 해야하는 허영심없이 현실적인 시선으로 패션과 유행을 대하는 모습에서 무언가 어른스럽고 멋지다는 생각까지 드네요.

    충분히 독창적이며 또래들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멋진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