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역대 왕 순서가 궁금합니다.
삼국시대 중 백제의 왕 역대 순서가 궁금합니다.
이름하고 같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풀네임이요!!!!!!
안녕하세요. 거북이놔두루미입니다.
1대 온조왕
B.C. 18-A.D. 28
백제를 건국한 초대 임금으로 고구려의 고주몽, 신라의 박혁거세처럼 탄생한 설화, 전설 같은 이야기는 없지만 백제의 모든 왕들 중에서 가장 많은 기록이 남아있으며 자신의 힘으로 나라를 건국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현대에는 고구려의 지배 세력과 힘을 합쳤을 것으로 해석한다.
2대 다루왕
28-77
온조왕이 세상을 떠나자 바로 왕으로 즉위했으며 재위 기간이 상당히 길기 때문에 의심하는 경우가 많다. 온조왕과 마찬가지로 낙랑, 말갈과 밀고 밀리며 피 튀기는 싸움을 했는데 삼국사기 기록에 의하면 최초로 신라를 공격해서 수백 년간 애증의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3대 기루왕
77-128
다루왕의 큰 아들 기루왕 역시 재위 기간이 상당히 길어서 논란이 되고 있으며 당시 천재지변으로 백성들이 서로를 잡아먹었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그는 신라를 공격하다가 105년 화친을 보내 우호관계를 유지했지만 신라에서 반란을 도모한 아찬 길선을 받아줘 사이가 틀어진다.
4대 개루왕
128-166
재위 기간이 39년에 달하지만 업적에 대한 기록은 고작 7줄뿐이며 북한산성을 쌓았다는 내용이 있지만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북한산성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5대 초고왕
166-214
신라의 반역자 아찬 기선의 송환 문제로 양국이 나쁜 관계를 유지하는 가운데 초고왕이 즉위하면서 공방전은 더욱 심해졌으며 말갈과의 사이도 좋지 않았기 때문에 두 나라와 전쟁을 하던 기록과 자연재해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6대 구수왕
214-234
초고왕의 장남으로 키가 2미터가 넘는 장신이었으며 역시나 말갈, 신라와 전투를 이어갔는데 말기에 들어서 하늘에 밤알 크기의 우박이 내리는 자연재해로 나쁜 평가를 받게 된다.
7대 사반왕
234-234
구수왕의 맏아들로 유언을 통해서 즉위했지만 이미 세력이 약해진 상태였으며 나이가 어리고 후비에게 얻었다는 추측 때문에 정통성 문제로 바로 폐위 당한다.
8대 고이왕
234-286
개루왕의 아들로 재위 기간을 보면 100세가 훨씬 넘는 나이를 자랑하기 때문에 고이왕을 실질적인 백제의 시조라는 학설이 존재하고 이후의 계보를 고이왕계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는 뛰어난 무예를 자랑하며 율령 반포와 내정을 정비하고 폐위하기 전에 신라에게 화친을 요청한다.
9대 책계왕
286-298
고이왕의 맏아들로 체격이 건장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대방 태수의 딸과 결혼하여 고구려의 공격을 막고 허물어진 위례성을 수리하기도 했는데 그에 대한 기록은 5줄에 불과하다.
10대 분서왕
298-304
총명하고 몸가짐이 바른 왕으로 알려져 있으며 한사군의 전쟁에서 전사한 책계왕의 왕위를 이어받게 된다. 낙랑의 서현을 기습해서 점령하는 업적을 세웠지만 자객에 의해 살해당한다.
11대 비류왕
304-344
삼국사기에 따르면 구수왕의 둘째 아들이라고 하지만 구수왕이 죽은 지 70년이 흐르고 재위 기간이 40년이기 때문에 적어도 110세는 넘게 살았다고 볼 수 있으며 별다른 업적은 존재하지 않고 백성에게 선정을 베푼 기록만 존재한다.
12대 계왕
344-346
삼국사기에 따르면 계왕이 즉위하다, 계왕이 죽다 2줄이 전부이며 2년 만에 승하했는데 고이왕을 시작으로 고이왕 – 책계왕 – 분서왕 – 계왕에 걸친 고이왕계는 여기서 끊어지게 된다.
13대 근초고왕
346-375
삼국사기의 내용을 보면 그가 재위한지 2년부터 21년 사이의 기록은 모두 공백으로 돼있는데 오히려 일본서기의 왜곡된 자료를 통해서 그의 업적을 찾을 수 있다.
그는 내치의 안정, 마한 정복, 남방 평정, 고구려와 전쟁, 일본 규슈 진출, 중국 산둥 진출 등으로 백제의 전성기를 이끌었다고 평가받지만 불분명한 자료가 많아 과장, 축소로 얼룩져있다.
14대 근구수왕
375-384
근고초왕의 아들로 뛰어난 전공을 세운 것으로 유명한데 왕위에 오르기 전에는 고구려의 평양까지 공격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정작 즉위를 하고 난 다음의 업적은 없는 편이다.
15대 침류왕
384-385
근구수왕의 장남으로 재위 기간은 짧지만 불교를 공인하면서 본격적으로 백제에 불교가 퍼지게 만들었기 때문에 교과서에도 등장한다.
16대 진사왕
385-392
근구수왕의 차남, 침류왕의 동생으로 삼국사기에 따르면 태자가 어리기 때문에 왕위에 올랐다고 하지만 일본서기에는 백제의 침류왕이 죽자 아신왕의 나이가 어려 숙부 진사가 왕위를 빼앗은 것으로 기록되있으며 현대의 학자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정통성의 문제가 있지만 그는 고구려와 전쟁을 하며 좋은 정치를 펼치면서 좋은 활약을 펼쳤는데 나중에는 사냥과 유희를 즐기고 고구려에 광개토대왕이 즉위하면서 무너지게 된다.
17대 아신왕
392-405
근초고왕 시절 백제의 전성기가 몰락하는 원인을 제공한 왕으로 고구려의 전쟁에서 좋은 활약을 보이기도 했지만 나중에 계속 패배했으며 광개토대왕에게 잡히자 노비가 되겠다고 말하며 항복을 했는데 이후에도 왜구를 끌어들이며 고구려를 공격하지만 패배하게 된다.
18대 전지왕
405-420
부친 아신왕이 광개토대왕에 패배한 다음 노객이 되겠다는 항복을 한 이후 복수를 위해서 왜구를 끌어들이고 태자 전지왕은 볼모로 잡혀서 일본에 머물게 된다.
405 아신왕이 승하하면서 왕위에 올라야 하지만 일본에 있었기 때문에 곤란한 상황에 빠지게 되는데 해씨 귀족의 지원을 받아서 무사히 왕위에 오르지만 별다른 업적은 없다.
19대 구이신왕
420-427
삼국사기에는 즉위와 사망에 관련된 기록만 남아있으며 일본서기에 따르면 나이가 어려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하고 정변으로 인해 비유왕에게 암살되었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20대 비유왕
427-455
아름다운 용모로 언변이 좋았기 때문에 외교적인 능력이 뛰어났으며 삼국사기에는 구이신왕의 아들, 전지왕의 서자라고도 하는데 나이를 생각하면 구이신왕의 형제일 가능성이 높다.
남북조시대 송나라에게 조공을 받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강력해진 고구려에 대응하기 위해 신라에 화친을 요청하고 좋은 사이를 유지하면서 나제동맹을 성립시키게 된다.
21대 개로왕
455-475
즉위하고 14년 동안 아무런 기록이 존재하지 않으며 그나마 나제동맹 덕분에 신라와 함께 고구려의 공격을 막고 북위에 고구려 침공을 요청했지만 실패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개로왕은 대를 이어서 원수로 생각하는 고구려를 공격하기 위해 신라뿐만 아니라 왜군, 중국군의 도움을 받으려고 했는데 이런 모습이 고구려를 자극해 장수왕의 침공을 받고 한성이 무너지면서 목숨을 잃게 되는데 일국의 왕이지만 묘비도 없이 매장되었다.
22대 문주왕
475-477
삼국사기에는 개로왕의 아들이라고 적혀져 있지만 일본서기의 동생이라는 기록이 근접하다고 추측하며 백성을 사랑하는 성품을 지니고 있지만 우유부단했다고 전해진다.
이 시기에는 장수왕의 공격을 신라와 나제동맹을 통해서 막고 있었는데 한성이 함락한 이후 웅진성(공주시)으로 도읍을 옮기고 방어하지만 해씨 가문의 해구에 의해 목숨을 잃는다.
23대 삼근왕
477-479
왕실의 권위가 약해지고 문주왕도 해구에게 시해당했기 때문에 정상적인 국정 운영을 하지 못했지만 덕솔 진로에게 명령하여 정예 군사 5백으로 해구의 반란을 진압한다.
13세 어린 나이에 즉위해서 해씨 세력을 무너트린 것을 보면 어느 정도 능력은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이후 권력을 잡은 진씨 세력에 의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24대 동성왕
479-501
문주왕의 동생 곤지의 아들로 해구의 반란을 잠재웠던 진씨 세력에 의해서 옹립되었으며 고구려와 말갈의 연합군을 신라, 가야와 연합해서 격퇴하고 외교적인 능력도 발휘한다.
그동안 최악의 상황을 달리고 있었던 백제를 다시 부흥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었지만 말년에는 사치와 향락을 즐기며 기근으로 죽어가는 백성을 무시했는데 그동안 왕의 정책에 불만을 표시하던 위사좌평 백가가 보낸 자객의 공격을 받고 얼마 후 목숨을 잃는다.
25대 무령왕
501-523
삼국사기에 따르면 무령왕은 일본에서 태어났으며 키가 8척에 따르는 백성이 많았다고 하는데 백가의 반대파에 의해서 추대되었기 때문에 동성왕의 복수를 위해 백가를 토벌하게 된다.
그는 503년 고목성을 공격하는 말갈족을 격퇴시키고 가야를 공격하고 세력을 넓히면서 힘을 키우면서 왕권을 강화하고 중국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안정을 도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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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 온조왕B.C. 18-A.D. 28고구려의 셋째 왕자인 온조, 백제를 세우다
2대 다루왕28-771대 온조왕의 맏아들
3대 기루왕77-1282대 다루왕의 맏아들
4대 개루왕128-1663대 기루왕의 맏아들
5대 초고왕166-2144대 개루왕의 맏아들
6대 구수왕214-2345대 초고왕의 맏아들
7대 사반왕234-2346대 구수왕의 맏아들. 나이가 어려 정사를 감당하지 못하여 곧 폐위됨.
8대 고이왕234-2864대 개루왕의 둘째 아들(삼국사기 기록). 삼국 중 가장 먼저 한강 유역을 차지함. 율령 반포, 관리 등급 마련(6좌평) 등 중앙 집권 체제를 정비하여 고대 국가의 기틀을 마련함.
9대 책계왕286-2988대 고이왕의 맏아들
10대 분서왕298-3049대 책계왕의 맏아들. 분서왕 7년에 낙랑의 태수가 보낸 자객에게 살해됨.
11대 비류왕304-3446대 구수왕의 둘째 아들(삼국사기 기록)
12대 계왕344-34610대 분서왕의 맏아들. 고이왕계의 마지막 백제왕.
13대 근초고왕346-37511대 비류왕의 둘째 아들. 백제의 전성기를 이룩한 왕. 왕위의 부자 상속을 확립함. 고구려 고국원왕을 전사 시킴. 가야/왜와는 교류하는 반면 고구려/신라는 견제함.
14대 근구수왕375-38413대 근초고왕의 맏아들
15대 침류왕384-38514대 근구수왕의 맏아들. 불교를 수용하여 백성의 사상을 통합하고 왕권을 강화함.
16대 진사왕385-39214대 근구수왕의 둘째 아들. 392년 광개토대왕이 이끄는 고구려군에 패하여 많은 영토를 잃음.
17대 아신왕392-40515대 침류왕의 맏아들. 396년, 광개토대왕이 이끄는 고구려군에 크게 패함.
18대 전지왕405-42017대 아신왕의 맏아들. 상좌평(백제의 최고 관직)을 처음 설치함.
19대 구이신왕420-42718대 전지왕의 맏아들. 고구려를 견제하기 위해 중국 송나라와 외교관계를 맺음.
20대 비유왕427-45519대 구이신왕의 맏아들(제18대 전지왕의 서자라는 설도 있음). 고구려를 견제하기 위해 신라, 왜, 중국 송나라 등과 우호관계를 형성함.
21대 개로왕455-47520대 비유왕의 맏아들. 475년 고구려 장수왕에게 한강유역 일대를 빼앗기고 목숨을 잃음.
22대 문주왕475-47721대 개로왕의 맏아들. 웅진으로 도읍을 옮김. 병관좌평 해구에 의해 목숨을 잃음.
23대 삼근왕477-47922대 문주왕의 맏아들. 13세의 어린 나이에 즉위, 15세에 죽음.
24대 동성왕479-50122대 문주왕의 동생인 곤지의 아들. 신라 왕실과 혼인 관계를 맺어 고구려 남진정책에 대항함. 신진 세력 등용.
25대 무령왕501-52324대 동성왕의 둘째 아들. 고구려에 적극적으로 맞서며 백제를 안정시키기 위해 애쓴 왕. 지방에 22담로를 설치하고 왕족을 파견하는 등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함.
26대 성왕523-55425대 무령왕의 아들. 사비성(지금의 부여)으로 도읍을 옮기고 백제 부흥을 이끈 왕. 554년 신라 진흥왕과의 격전에서 전사함. 이로써 나제동맹관계는 결렬됨.
27대 위덕왕554-59826대 성왕의 맏아들
28대 혜왕598-59926대 성왕의 둘째 아들. 즉위하고 이듬해에 죽음.
29대 법왕599-60028대 혜왕의 맏아들(삼국사기 기록). 즉위하고 이듬해에 죽음.
30대 무왕600-64129대 법왕의 아들. [삼국유사]에 무왕과 관련된 서동설화가 전해짐.
31대 의자왕641-66030대 무왕의 맏아들. 백제의 마지막 왕. 의자왕 초기에는 대야성전투 등 신라에 적극적 공세를 취함. 그러나 660년 나당연합군의 공격으로 백제가 멸망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