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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조리마수리346
요리조리마수리34623.08.12

미국의 독립전쟁에 스페인과 프랑스가 도움을 준 이유가 무엇인가요?

영국과 미국의 독립전쟁이 벌어졌을 당시에 요크타운 전투에서 프랑스 그리고 스페인이 전쟁을 지원해주게 되면서 승기를 잡을 수 있었는데요. 이때 이 두 국가가 도움을 주게된 원인이 무엇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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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2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8.12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프랑스가 영국에 대해 열등감을 가진 것 자체는 맞고 프랑스 자체적으로 이를 극복할만한 수단이 없던 것도 사실이며 미국의 독립 전쟁이 이 수단이 되어줄 수 있기에 프랑스가 상당히 지원해준 것도 사실이지만 오히려 협상 자체는 언제나 프랑스가 주도권을 잡고 있었습니다.

    프랑스에 협상가로 찾아왔던건 벤자민 프랭클린인데, 이들의 상대로 프랑스측에서 내보낸 인물은 외무장관인 '샤를 그라비에 베르젠'이라는 닳고 닳은 정치인 겸 협상가였다. 이 당시 정치 초짜인 미국과 왕조가 여러번 바뀌면서도 기틀은 유지했던 정치 고인물인 프랑스의 위치를 보자면 토끼 하나 잡자고 사자를 보낸 격. 실제로 벤자민과 사절단이 울고불고 사정해도, 현 상황과 프랑스의 열등감을 꼬집어 그를 감정적으로 만들려 해도, 다 안먹히자 반쯤 협박인 행위까지 할 수 있는 수란 수는 다 쓰고도 베르젠은 끄덕도 안하고 본래 자신이 생각했던 범위인 통상 조약, 동맹, 원조, 차관만 확약하고 선을 딱 그었으며 심지어 이후 이미 추가 지원군을 파병시켜주고 있는 와중에도 물질적 지원이 아닌 지원군 파병을 요청하는 미국측에게 계속 답을 미루는 척하는등 협상 자체는 시종일관 벤자민이 베르젠에게 끌려다니는 모양새였습니다.

    벤자민이 프랑스에서 영국에 대한 열등감과 친미 여론을 고조시켰던건 효과적인 한 수고 뭐고간에 베르젠을 상대론 아무것도 안먹혀서 그나마 시민들 상대로 어그로라도 끌어서 프랑스 정부를 약간이라도 움직여보자는 생각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미국 13개주는 영국의 과도한 세금부과와 정치적 제한에 대한 불안이 쌓여가던 중 독립에 대한 첫걸음을 시작합니다. 1775년 4월 19일 렉싱턴과 콩고드 전투에서 미국과 영국의 군사적 충돌이 일어나면서 본격적인 독립운동이 시작됩니다. 전쟁은 8년간이나 지속되었으며 이 기간동안 수많은 전쟁과 합의를 반복하게 됩니다. 영국은 군사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와 스페인의 도움을 받은 미국이 1781년 요크타운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전쟁은 막을 내리고 1783년 파리조약이 체결되면서 미국 13개주는 독립국가의 지위를 갖게 되었습니다. 프랑스와 스페인이 미국을 도운 이유는 식민지 쟁탈과정에서 영국과의 잦은 마찰로 적대적 관계가 형성되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프랑스는 영국과 100년 전쟁을 치르는 등 적대관계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