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쿠 다가마가 인도까지 가게된 여정이 궁금해요.
포르투갈의 바스쿠 다가마는 최초로 바닷길을 통해 인도에 간 유럽인인데요. 향신료를 얻기 위해 떠났고 아프리카 희망봉도 거쳤다던데, 어떤 험난한 여정이었는지 그 사이 다른 사건들은 없었는 지 알고싶어요~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인도로 가는 길
1497년 7월 8일바스코 다가마는 4척의 배를 이끌고 리스본을 떠나 인도로 향했다. 선단은 120톤급의 캐랙 범선 2척과 50톤급 캐러벨 범선 1척, 보급선 1척으로 총 168명의 선원이 참가했다. 아프리카 대륙을 돌아 인도로 가는 길을 잡은 바스코 다가마는 희망봉을 발견한 바르톨로뮤 디아스와 동행했다. 이전에 서부 아프리카 해안을 남하한 경험이 있는 바르톨로뮤 디아스는 연안을 따라가지 않고 대서양 바다 가운데로 멀찍이 돌아갈 것을 조언했고, 바스코 다가마는 이를 받아들였다. 덕분에 바스코 다가마의 선단은 기니만의 무풍지대와 해안의 무역풍 맞바람을 피해 비교적 순조롭게 아프리카의 최남단까지 도달하였다.
11월 22일 희망봉을 돈 바스코 다가마는 아프리카 동쪽 연안을 따라 북상하여 모잠비크, 몸바사를 경유해 다음 해 4월 케냐의 말린디에 도착했다. 바스코 다가마는 이곳에서 이슬람의 항로 안내자 이븐 마지드의 안내로 인도양을 건너 5월 20일 인도의 캘리컷(현재의 코지코드)에 도착하였다. 이것은 대서양에 면한 포르투갈과 인도양의 인도사이에 바닷길을 최초로 개척한 사건이었다.
첫번째 항해에서 돌아와 마누엘 1세에게 자신이 구한 무역품을 보여주는 바스코 다가마.
바스코 다가마는 캘리컷의 힌두 통치자 사마린을 만나고 무역을 청했다. 그러나 그들이 포르투갈에서 가져간 물건들은 너무 조악하고 수준이 떨어지는 것이었다. 당시 훨씬 세련된 문명을 구가하고 있던 이슬람권과 무역을 하던 캘리컷 사람들에게 바스코 다가마 선단이 가져온 물건들은 눈에 차지 않았다. 무역은 성립되지 않았고 조약도 맺지 못한 채 바스코 다가마는 향신료만 조금 구한 후 귀국길에 올랐다.
인도로 갈 때는 비교적 순조로운 항해였지만 포르투갈로 돌아오는 길은 무척이나 험난했다. 인도로 갈 때는 뒤에서 불어 뱃길을 도와주던 바람에 맞서 돌아오느라 바스코 다가마의 선단은 23일 만에 건넜던 인도양을 3달에 걸쳐 횡단해야만 헸다. 오랜 항해는 선원들의 영양상태를 악화시켰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괴혈병이 돌아 1499년 바스코 다가마가 리스본으로 돌아왔을 때 살아남은 선원은 떠날 때의 1/3인 55명에 불과했다.
비록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별다른 무역 성과를 낳지 못한 항해였지만 인도로 가는 길을 개척했다는 데 포르투갈의 왕은 감격했다. 그리고 바스코 다가마에게 귀족의 작위를 내리고 인도양의 제독이라는 칭호도 하사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바스코 다가마 [Vasco da Gama] - 유럽에서 아프리카를 돌아가는 인도항로의 개척자 (인물세계사, 김정미)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바스코는 1947 인도로 향해다가
아프리카 대륙을 돌아 인도로 가는 길을
잡은 바스코 다가마는 희망봉을 발견한
바를톨로뮤 디아스와 동행, 이전 서부
개척길을 안가고 기니만의 무풍지대와
해안의 무역풍 맞바람을 피해 비교적
순조롭게 인도로 도착
귀국길에는 바람과 맞써는 바람에
3달이 걸리고 살아남은 선원은
1/3밖에 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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