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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철한말
냉철한말22.11.14

우리나라 군대는 언제부터 총을 소지했나요?

우리나라는 외세의 침략이 있을 때마다 무기의 열세로 늘 고전을 면치 못 했습니다. 조선말부터는 우리나라도 총을 소지하기 시작한거 같은데 정확히 언제 어떤 경로로 총을 가지기 시작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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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총을 처음 제조한 시기는 고려 말엽인 1377년(우왕 3)경으로, 최무선(崔茂宣)의 건의로 화약무기 연구와 제작을 맡은 화통도감(火熥都監)이 설립되면서 중국의 것을 모방하여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름은 승자총통으로 최소의 개인화기이나 지금의 방아쇠 방식이 아닌 많은 화약을 넣은 후 심지에 불을 붙여서 발사되는 방식이라 준비시간이 많이 걸려 조준이 어려운 점이 있었다고 합니다.

    방아쇠 방식은 조선 중종 당시 개발하였으나, 활이 주력이었기에 대량 보급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선견지명이 있어 대량보급하여 전력화했더라면 임진왜란 때 왜의 조총과 맞서서 싸우기 좋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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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우리나라 옛 조선은 임진왜란때 일본이 침략을 함으로 조총을 알게되었고 패색이 짙었던 전쟁 초기에 조총의 위력을 뼈저리게 실감했던 조선은 노획한 일본의 조총을 분해해보고 조선에 투항한 일본인 기술자에게 도움을 받아 1593년부터 조총을 생산하여 군대에 지급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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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우리나라가 1876년 강화도조약을 체결한 이래 제국주의 세력의 침투가 심해지자 조선 정부는 이에 대비하기 위해 부국강병책을 모색하며 신문명과 근대적인 기술을 받아들이는 개화정치를 지향하게 된 조선 정부는 이러한 계획의 일환으로 일본에는 수신사, 청나라에는 영선사를 파견해 문물제도의 시찰과 근대적 기술학을 배워오도록 하였습니다. 바로,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탄생한 것이 별기군입니다.지원자의 80여 명을 특별히 선발하여 무위영(武衛營)에 소속시키고 아룰 이를 별기대(別技隊) 또는 별기군이라 했지요. 또 일본인 교관에 의해 훈련된다 하여 왜별기(倭別技)라고도 하였다.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신식총기를 가지고 훈련 받은 신삭 군대가 되기도 하지만 임오군란의 원인아 되기도 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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