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동래설은 고려를 거쳐서 소중화를 자처하는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사실로 정착되었다. 조선시대 성리학이 국가의 이데올로기가 되면서 불교 대신에 조선의 국가이념을 뒷받침해주는 일종의 만들어진 고대역사의 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세기 이후 근대적인 역사학이 등장하면서 기자조선은 신화로 그냥 남게 되었다.
기자가 고조선 지역에 책봉받아 세웠다고 전해지던 왕조. '후조선'(後朝鮮)이라고도 했다. 고조선이 사라진 이후, 삼국시대부터 19세기까지 기자조선은 사실로 믿어졌지만 현대에 발달한 연구 방법이 도입된 이래로 기자조선은 고고학적 발굴과 배치되어 국내 학계에서는 그 실체를 부정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현대 한국인들도 단군은 알지만 기자에 대해선 모르는 사람들이 꽤 많다.
여기서 실존 불인정은 정확히 말하자면 '기자 동래설 or 기자 피봉설'을 말하는 것이다. 위만 이전에 있었던 고조선의 실체가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기자조선이 아닌 토착계 국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원리로 한국의 역사학계는 <단군 신화>를 실증적으로는 부정하지만 역시 위만 이전에 있었던 토착 고조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또 이와 관련하여 위만이 찬탈하기 이전 고조선의 부왕과 준왕의 조선을 단군조선 내지는 단군조선이 아니더라도 위만 이전에 존재했던 토착 고조선 왕계로 봐야 할 지, 기자조선의 후반부로 봐야 할 지에 대한 소소한 논란이 있는데 어차피 단군이든 기자든 실증적으로 논하긴 어려운지라 그리 큰 의미는 없다. 쉽게 말해 단군조선/기자조선을 구체적으로 따지기엔 둘 다 확증할 만한 고고학적 근거가 부족하니 그냥 고조선으로 퉁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