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선교사들이 일본의 기독교 전파를 포기한 이유에 대해 궁금합니다.
커뮤니티 글을 봤는데요.
일본 전국시대 때 일본이 조총과 화약을 구하기 위해서 포르투칼 상인들에게 일본인 노예들을 거래했다고 하는데요.
이 일에 앞장 섰던게 포르투칼 선교사였어서 일본인들은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해져 기독교화가 안되었다고 하는데
전문가 분들이 보시기에 이런 시선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일리 있나요?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기독교(그리스도교)는 불교보다 훨씬 늦은 1549년 프란시스코 사비에르(1506~1552)라는 선교사에 의해 전래되었다. 규슈와 주고쿠 지방의 다이묘 가운데 서양의 문물에 대한 관심이나 무역상의 이익 등을 고려하여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 생기면서 17세기 초에는 신자수가 약 70만 명으로 급격하게 늘어났다. 그러나 임진왜란을 일으켰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자기보다 신을 존중하는 것이 두려워 1587년 선교사 추방령을 내려 신국(神國) 일본에서의 사악한 종교의 포교를 금지하고 나가사키를 몰수해버렸다. 이때부터 기독교 탄압이 시작되어 1597년에 일본 최초의 기독교 순교인 이른바 26성인의 순교가 일어났다.
또한 에도 막부도 1612년 금교령을 내려 근세 쇄국하에서 기독교는 완전 금기시되어버린다. 그 후 근대 들어 1873년 구미제국의 요구에 의해 메이지 정부가 기독교 금교를 해제하자 가톨릭, 개신교, 러시아정교의 선교사가 들어와 활동을 개시하면서 신앙의 자유를 인정받게 된다. 서구 문화의 중심을 이루어온 기독교는 서구화·근대화를 추진하려는 일본에서 다시 포교활동을 하게 되고, 선교사들은 선교활동 이외에, 사회사업과 교육사업도 벌여 서구문물을 일본에 전파하게 된다.
당시 서구세력 앞에서 근대화를 통해 일본의 생존과 번영을 꾀하고자 하였던 일본은, 정신은 일본에 바탕을 두고 기술은 서양에서 받아들이고자 하는 화혼양재(和魂洋才)의 흐름과 신불분리를 통한 신도국교화 등으로, 사실상 종교로서의 기독교가 일본 내에서 정착하기는 어려웠다. 더불어 범신론적 일본인들에게 있어서 유일신인 기독교 교리는 쉽게 수긍되지 못하였다. 오늘날의 기독교는 전세계 인류의 3대 신앙으로 그 세력을 넓혀가고 있으나, 일본의 기독교는 전 인구의 1%에도 못 미치는 신자수를 기록하고 있다.[네이버 지식백과] 기독교 (새로운 일본의 이해, 2005. 3. 2., 공의식)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549년 예수회 신부인 프란치스코 자비에르에 의해 처음 복음이 전해진 일본은, 한 때 기독교가 번성하기도 했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에도 막부정권 아래서 무자비한 기독교 박해의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일본이나 우리 나라나 처음에는 종교 박해가 엄청 나게 있었습니다. 다만 우리나라는 그것이 성공해서 약 30% 인 1000만명 정도의 기독교 인구가 생긴 것이고 일본은 그 것이 실패해서 인구의 약 1% 인 100만명 정도가 밖에 안되는 것 입니다. 일본은 그리고 기독교가 자리 잡기에 너무 무속 신앙과 토속 신앙이 강한 나라였습니다.
서양 선교사들이 일본의 기독교 전파를 포기한 이유에 대해 전문가의 의견은 다양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가능한 이유 중 일부입니다:
문화적 차이와 어려움: 일본은 독특한 문화와 체제를 갖고 있었으며, 서양 선교사들은 이를 이해하고 수용하기 어려웠을 수 있습니다. 언어, 관습, 종교적 관념 등의 차이로 인해 기독교 전파가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정치적인 어려움: 조총과 화약을 구매하기 위한 노예 거래와 관련하여 포르투갈 선교사들이 앞장섰다는 주장은 일부 역사적인 기록에서 언급되었을 뿐이며, 그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입증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불이익과 혼란이 기독교 전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일본 사회의 저항: 기독교는 기존의 일본 신앙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으며, 그에 따른 저항과 거부가 있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일본의 특수한 사회 체제와 관습에 뿌리를 둔 일본의 종교는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다른 우선순위와 관심사: 선교사들은 기독교 전파뿐만 아니라 일본 사회의 교육, 의료, 사회 복지 등에도 관심을 가졌을 것입니다. 이러한 다양한 활동들은 기독교 전파에 대한 시간과 노력을 분산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서양 선교사들은 기독교 전파를 포기하거나 기독교화가 진행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적인 사건과 관련된 평가는 맥락과 시대적 조건에 따라 변할 수 있으므로, 항상 다양한 의견과 주장을 종합하여 이해해야 합니다.
덧대면 일본은 여러가지 신들이 엄청 다양하고, 동시에 여러 신들을 섬기는데
기독교도 그 중 한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 신과 다른 신을 동시에 믿는 사람들도 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