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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
환한슴새70
환한슴새70
22.08.14

과거 사농공상이 될 수 있었던 이유가 있나요?

과거 신분 순위를 보면 사농공상 순으로 있었다는데, 상인은 이해가 되나, 왜 기술자들이 대우를 받지 못하였나요..? 사회 분위기때문이었는지, 특별한 이유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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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유성 전문가blue-check
    조유성 전문가
    22.08.14

    안녕하세요. 경제&금융 분야, 재무설계 분야, 인문&예술(한국사) 분야 전문가 테스티아입니다.

    당시 사회 분위기상, 조선의 건국 이념인 성리학에 비춰봤을 때 학문을 하는 선비(사)가 가장 높은 대우을 받았으며, 그 다음이 정당하게 땀흘려 노동해 먹을 것을 생산하는 농사꾼들(농)이 평민층을 이루었습니다. 그 다음이 공(장인, 기술자)과 상(상인 등)이었는데 이들은 천시되었으며, 천민은 아니었지만 사실상 학문이나 농사보다 더 낮게 그 산업 자체가 평가절하 되었던 시기였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육아·아동전문가입니다.

    조선은 농업을 근본에 둔 농업국가입니다. 상인들이 번성하면 농민과 국가이익이 줄어든다 생각했습니다. 농민이 절대 다수이고, 농민의 생산으로 나라 경제가 영위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공인들 즉 기술자들은 그 수가 농민에 비해 극히 적고 관청어 물건을 제조하여 세금조로 납부하고 나머지 생산분으로 생활을 꾸려나가는 이들로 근본적으로 상인과 비슷한 취급을 받았습니다. 예를들어 고려때 귀화한 여진족들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가죽제품을 만들어 팔았는데 그 뿌리를 천한 것으로 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