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경제&금융 분야, 재무설계 분야, 인문&예술(한국사) 분야 전문가 테스티아입니다.
당시 사회 분위기상, 조선의 건국 이념인 성리학에 비춰봤을 때 학문을 하는 선비(사)가 가장 높은 대우을 받았으며, 그 다음이 정당하게 땀흘려 노동해 먹을 것을 생산하는 농사꾼들(농)이 평민층을 이루었습니다. 그 다음이 공(장인, 기술자)과 상(상인 등)이었는데 이들은 천시되었으며, 천민은 아니었지만 사실상 학문이나 농사보다 더 낮게 그 산업 자체가 평가절하 되었던 시기였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