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도 지금의 진보 보수의 형태가 있었나요?
지금의 정치는 늘 진보 보수의 싸움으로 보여지고 있는데요.조선시대에도 붕당정치라는게 있었다라고 배운적이 있습니다. 지금의 진보 보수와 어떤 차이가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진보와 보수의 개념은 프랑스 루이 16세 당시에 왕의 좌측의 자코뱅파가 급진개혁 세력이고 우측의 지롱드파는 보수온건 세력이었기에 좌파 우파 좌익 우익등으로 불리면서 좌파는 진보 우파는 보수로 불린 것이 우리나라에도 들여와서 진보 또는 보수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당파로 나뉘어 노론 소론 남인 서인 등 4색 당파싸움으로 서로 힘겨루기를 했습니다. 효종의 비의 상을 1년이냐 9개월이냐 효종의 상을 3년이냐 1년이냐를 두고 남인과 서인간의 싸움과 무오사화 갑자사화 기묘사화 을사사화 등과 같은 정변에는 당파의 힘겨루기가 있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은 15세기말 부터 훈구파로 불리는 기성 관료 집단을 비판하는 사림파(士林派)가 생깁니다. 처음에는 훈구파를 보수파, 사람파를 진보파로 볼수도 있었으나 시간이 가면서 양자의 충돌로 여러 차례 사화가 반복하던 끝에 정치적 이해 관계를 같이 하는 무리로서 붕당이 발생해 오랜세월에 걸친 당쟁이 시작되지요. 당쟁 발생의 직접적 원인으로는 선조대에 심의겸(沈義謙)과 김효원(金孝元)의 이조전랑(吏曹銓郎) 추천 문제로 생겼고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조정의 인사들이 서인(西人)과 동인(東人)으로 나뉘고 모든 관료와 지식인들이 대를 물려가면서 대립하는 양상을 빚게됩니다. 동서분당 이후 붕당은 계속 핵분열을 일으켜 동인에서 갈린 남인(南人)·북인(北人)·서인(西人)에서 나뉜 노론(老論)·소론(少論) 등을 흔히 사색(四色)이라고 하여 중심적인 붕당으로 알려져있지요. 붕당간의 대립은 지극히 배타적이었을 뿐더러 주로 복상(服喪) 문제, 세자책봉 문제 등 민생과는 관련이 없는 자신들의 이권 다툼중심으로 전개되어 국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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