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광해군은 임진왜란으로 황폐화된 국가체제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고 명, 청 교체기의 국제 현실에서 균형있는 중립외교를 펼쳐 조선의 안보를 유지하려 했습니다.
대동법을 시행, 군적 정비를 위해 호패법을 실시, 동의보감 등의 서적을 간행하나 붕당 간의 대립이 심화된 상태에서 왕권의 기반은 매우 취약했고, 1613년 계축옥사를 일으켜 왕위를 위협하던 영창대군 세력을 제거, 1617년 인목대비의 존호를 삭탈하고 경운궁에 연금시키는 등 왕권을 둘러싼 갈등이 날카롭게 드러났습니다.
이러한 일은 성리학적 윤리관에 기초하던 사림세력에거 패륜으로 비판받았고, 중립외교로 후금과 평화관계를 유지한 것도 사림 세력에게는 명나라에 대한 명분과 의리를 저버린 행위로 비판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