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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감찬 장군은 983년(성종 3) 과거에 문과 장원 급제하여 예부시랑으로 관리 생활을 시작한 인물입니다. 그런데, 거란의 2차 침입시 현종을 피난을 건의하여 사직을 보호한 공으로 문하평장사와 서경 유수를 겸하게 되었으며, 3차 침입시 상원수로 군사 20만을 이끌고 1019년 귀주대첩로 거란을 격퇴하였습니다.
강감찬 장군이 장군이라는 칭호를 사용하게된 배경은 20만군을 '상원수'로서 귀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장수라는 측면에서 장군이라는 칭호로 불릴 수 있습니다. 즉 임시직 '상원수'에 의미가 있습니다. 두번째는 고려는 무신의 최고 직책인 상장군이 정3품으로 대군의 지휘권은 문신에게 있습니다. 따라서 국방을 논의하는 최고 기관인 도병마사에 무관이 참여할 수 없습니다.
강감찬은 1029년 문하평장사(정2품), 1030년 문하시중(종1품), 1031년 중서령(종1품) 추증으로 모두 문관 관직을 제수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