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선조시대때의 매장문화에 대해 궁금합니다.
고대시대부터 삼국시대 조선시대를 거쳐오면서
수많은 분들이 돌아가시면서 땅에 묻힌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현재와 같이 납골당 같은 문화가 없었을것 같은데요.
조상님들 시대에는 무조건 땅에 묻는 매장문화밖에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 선조들의 장례문화 중 다양한 장법이 있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화장과 매장 이외에도 여러 장법이 우리나라에서 지속적으로 시행되었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 후손들이 시신을 가매장을 한 후에 일정 시간이 지나서 뼈를 수습해서 마무리 짓는 세골장이 있습니다. 동옥저는 사람이 죽으면 우선 겨우 몸만 가릴 만큼 흙으로 덮어서 가매장하였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망자의 시신은 살이 썩고 뼈만 남았습니다. 후손들은 뼈만을 잘 추려서 10m 정도 크기의 덧널 속에 이미 있는 가족의 뼈와 함께 안치하는 방식으로 장례를 치렀다고 합니다.
이와는 약간 다르게 시신을 초분으로 처리하고 일정한 시간이 경과한 후에 뼈를 추슬러서 땅에 매장한 세골장이 있습니다. 초분은 시신을 땅에 묻지 않고 짚으로 만든 가묘에 일정 기간 동안 장례하는 방식입니다. 이후에 후손들이 뼈를 추스르고 매장하여서 정상적으로 묘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방식은 전라도의 남해안지역을 중심으로 행해졌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백제의 경우 종교가 불교였으므로 시대별 장례문화인 화장을 한 후 뼈를 추려 땅속에 묻는 매장법으로 진행했고 삼국시대 장례문화는 신라대부터 변화를 보이게 됩니다.
신라 지증왕때부터 왕과 부모, 처자가 사망했을 때 모두 1년동안 상복을 착용, 순장을 금지했습니다.
통일신라 이후 불교의 법식에 따라 일반인들 사이에서 화장이 성행, 고려는 불교를 정신적 이념으로 삼아 유교를 사회 통치 이념으로 삼았으므로 화장과 매장을 병행했습니다.
조선시대 이전 불교적 색채가 강하고 조선시대 불교식 제를 금하고 유학의 영향을 받아 주자가례가 기본이 되며 조선 초 초상이 나면 상여를 맬 향도를 불러 노래를 부르고 술을 마시며 상주를 위로, 이후 일제강점기시대 매장풍습은 화장장과 공동묘지라는 새로운 장례문화가 탄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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