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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a
cola23.02.10

영조가 자신의 친아들을 죽이게 되기까지

사도세자랑 영조가 처음부터 사이가 나빴다고 들었던 것 같지는 않은데요... 어떠한 특별한 이유가 생겼기에 자신의 친아들을 뒤주에 넣어둬서까지 죽였던건가요? 아들이 죽고 나서 영조는 슬퍼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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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참 슬픈일인데요, 사도사제가 노론에게 둘러싸여 힘든 생활을 하였고 정치적 희생양입니다.

    놀기를 좋아한 사도세자는 울화병에 걸렸고 8일동안 뒤주에 갖혀 있다 죽었습니다.


    자식을 잃고 슬퍼하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을까요?

    영조도 어쩔 수 없어서 그렇게 한것이 비극이 된것일 겁니다. 자식이 부모를 죽여도 부모가 자식을 죽이는 일은 극히 드문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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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사도세자가 자라면서 정신의 이상이 생겨 공부는 하지않고 기생들과 비구니와 음란한 짓을하며 자신을 반대하는 환관이나 궁녀들을 백명이 가깝게 죽였다고하며 어머니인 선희궁을 죽이려하다가 아버지 영조를 죽이려는것을 어머니 선희궁이 남편인 영조에게 알려 뒤주에 넣어 죽였다는것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아들이 자신을 죽이려한 정신이 이상한 아들이라도 뒤주에 넣어 아들을 죽여야했던 영조의 마음은 결코 편하지 않았을겁니다 그것이 부정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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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경제&금융 분야, 재무설계 분야, 인문&예술(한국사) 분야 전문가, 지식iN '절대신 등급' 테스티아입니다.

    * 사실상 사도세자로 인해 당파싸움이 더 심해지고, 세손(후의 정조)이 더 보위를 잇기 적당하다고 판단한 영조는 세자를 제거할 명분을 가졌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초기에는 당연히 세자로 하여금 왕위를 잇게 하고자 했지만 영조의 생각대로 세자가 따라주지 않자, 이에 분노를 느껴 뒤주에 가두어 죽게 했다고 봅니다. (* 사도세자는 원래 장헌세자였는데, '슬픔을 애도한다'는 뜻의 사도 라는 칭호를 내린 것이죠, 따라서 영조는 슬퍼했던 것이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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