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권기헌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흥선대원군은 긍정, 부정이라는 것이 객관적으로 그러했다라는 것이 아닌 후대의 평가가 많이 나뉘는 인물이며, 행적의 인물이죠.
고종의 즉위, 척화비, 경복궁 중건 및 당백전 남발, 임오군란(본인이 직접 한 것은 아님) 등등 연결된 사건들이 많죠.
그 중 긍정과 부정으로 많이 나뉜 것이 척화비 건립(1871년) 등으로 인한 반외세 정책이었습니다. 척화비는 서양 오랑캐로부터 조선을 지킨다는 쇄국정책의 상징이며, 조선의 개방이 조금은 늦어지게 된 사건입니다.
척화비를 세울 당시는 이미 청나라, 일본이 외세에 의해서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었고, 이에 좋든, 싫든 문호를 개방하고 서양문물에 눈을 뜨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조선은 그만큼 늦어지게 된 부분이 정말 좋은지, 나쁜지는 모르는.. 그래서 평가가 긍정, 부정이 나눠지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