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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캐슬
아이언캐슬23.05.22

조선시대의 땅문서에는 어떤내용들이 기재되어 있었나요?

조선시대에는 지금으로 치면 등기부등본같은 땅문서라는게 있었잖아요, 그런데 그당시의 당문서에는 어떤내용들이 기재되어 있었나요? 그리고 땅의 정확한 주소, 위치, 면적등의 정보도 포함되어 있었나요? 그당시에도 정확한 주소, 위치, 면적등을 정확하게 측정할수가 있었는지도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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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시대의 토지 문서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명문에는 반드시 팔고자 하는 토지의 위치와 크기 그리고 매매가 등을 적어야 했고 토지 크기는 몇 두락(斗落) 몇 배미(夜味) 등으로 표현하였다고 합니다. 두락이란 지금의 마지기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마지기는 지역마다 혹은 토지의 비옥도에 따라 그 크기가 달랐는데, 척박한 토지일수록 마지기 당 평수가 많았습니다. 요즘 세상이야 전국의 모든 토지 마다 고유한 지번이 정해져 있지만 조선시대에는 그렇지 않았기에 마을마다 “천지현황 天地玄黃”으로 시작되는 천자문 千字文을 가지고 지번을 대신하였다고 합니다. 관아(官衙)가 기준이었는지는 혹은 마을 입구가 기준이었는지는 몰라도 가장 앞쪽에 위치한 토지를 천“天”字畓, 그 다음에 있는 토지를 지 “地”字畓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부분은 조선 토지 문서에는 매도자가 매도할 땅을 소유하게 된 과정과 그 땅을 팔게 된 이유를 적는 부분인데요. 예를 들어 자기가 매입한 땅이라면 “자기매득(自己買得)”, 조상 대대로 전해 온 토지라면 “조상전래(祖上傳來)” 하는 식이었다고 합니다. 땅을 팔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대부분 “긴히 쓸데가 있어서(要用所致)”라든가 혹은 “필요한 데가 있어서(緊有所致)”라는 식입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한성부에서 발급하는 한성부입안 은 토지매매 관련 입안문서로 지금의 등기부등본 정도로 이해되는데 여기에는 이름, 지명으로 매매 대상지, 한성부 판윤의 수결이 있으며 한성부의 관인 3과가 찍혀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