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1919년 도시와 농촌 곳곳에서 전개된 3ㆍ1운동은 국내외에서 활동하던 많은 민족 지도자들과 독립운동가들에게 희망을 안겨주었고, 이에 이들은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각지에서 정부를 수립하고자 하였다. 이 중 중국 상하이에서는 이동녕, 신규식, 조소앙, 여운형 등이 중심이 되어 임시정부 수립을 모색하였다. 그 결과 1919년 4월 11일 상하이의 프랑스 조계(租界,중국을 침략하는 근거지로 삼았던 개항 도시의 외국인 거주지)에서 상하이, 국내, 러시아 등지에서 활동하는 독립운동 대표자 29명이 모여 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회의를 열게 되었다. 그리고 이 회의에서 임시의정원을 구성하고 대한민국이라는 국호와 민주공화제를 표방하는 임시헌장 10개조를 제정·공포한 뒤, 국무총리(이승만)를 수반으로 하는 6부의 국무원을 구성한다는 합의가 이뤄졌다. 이어 4월 13일에 임시정부가 출범하게 되었다.
상해 임시정부 수립 당시의 참여자로는 여운형, 조동호, 손정도, 조소앙, 김철, 선우혁, 한진교, 신석우, 이광수, 현순, 신익희, 조성환, 이광, 최근우, 백남칠, 김대지, 남형우, 이회영, 이시영, 이동녕, 조완구, 신채호, 진희창, 신철, 이영근, 조동진, 여운홍, 현장운, 김동삼 등 29인이 있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