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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법은 조선 백성에게 어떤 이득이 있었나요?

조선 숙종때 대동법을 전국으로 확대 실시 했다는데 공물을 대동미로 대신납부하면 당시 조선의 백성에게는 어떤 점이 이득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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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대동법은 가호 단위로 지역의 토산품을 납품하던 공납제도를 방납, 대납의 폐단이 심화되자 광해군때부터 토지 단위로 쌀, 삼베, 무명, 동전 등으로 바꾼 제도입니다.

      대동법의 시행으로 백성의 부담이 감소했습니다. 토지가 없는 농민들은 이제는 세금이 면제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토산품을 구하거나 운반하는 비용, 시간이 절약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방납의 폐단이 사라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국가 재정 확충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현물로 훼손되기 쉬운 공물을 쌀이나 동전, 옷감으로 전환하여 쉽게 거두어 들일 수 있었어요. 그외로 상품 화폐경제의 발달에 이바지 하여 서민들의 삶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상공업의 발달로 서민들도 생업의 기회가 확대되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신분제도의 변화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중기인 광해군 숙종 이후에도 지방의 특산물로 바치던 공물을 쌀로 통일하여 바치게 한 세금 제도 입니다. 토지의 결수에 따라 1결당 12두씩을, 또는 산간지역 등 쌀이 잘 나지 않는 지역의 경우에는 삼베, 무명, 나중에는 동전까지 거두었다고 합니다. 일바 백성들에게는 특산물을 준비 하는 것 보다 훨씬 부담을 덜하게 만들어 준 결과를 가져 왔습니다.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대동법의 시행으로 백성은 과중한 공납의 부담에서 벗어났으며 국가는 안정적인 재정수입을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또 백성 역시 쌀로 내는 대동법 실시로 자기의 생산물을 시장에 내다팔아 쌀을 마련하는 일이 흔해졌습니다. 전국의 모든 백성이 시장에 물건을 내놓고 거래가 이루어지면서 전국 곳곳에 장시가 더 크게 많이 만들어졌습니다. 거래가 자주 많이 이루어지면서 손쉽게 보관할 수 있는 화폐의 필요성이 자연스럽게 대두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상평통보(엽전)는 누구나 흔히 사용하는 화폐가 되었던 것입니다. 대동법의 시행으로 수공업과 상업이 발달하고 화폐 사용도 많아지면서 조선 후기 상품화폐경제 역시 발달하게 됐던 것입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대동법의 직접적인 효과는 공물을 대신

      납부해 주고 폭리를 취하는 '방납'(防納)의

      근거가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16세기에 방납이 극성하였는데 극단적인

      경우이겠지만 생선 한 마리의 방납가가 쌀 10말, 인삼 1근이 무명 16필, 송이버섯 3사발에 무명 40필이라고 할 정도였으니 어느정도

      조율이 되었음을 알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