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선, 당시는 조선의 극 초기 였기 때문에 현재 사람들이 생각하는
엄격한 도덕주의 조선 같은 분위기가 전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매우 활발한 개혁이 진행되고 있었죠
그리고 양녕과 충녕 사이의 차이가 너무 심했습니다
양녕은 술과 사냥, 여자 등 당대의 노는 것이라면 눈이 뒤집혀 온갖 사고치고 다녔으며
말년에는 며느리도 건드렸다는 인간 쓰레기 였습니다
그래서 장자계승의 원칙을 어겨서 생기는 왕권손실보다
양녕이 왕이됬을대의 피해가 더 크다고 판단된 것이죠.
다른 후계자가 없다면 또 모를까, 한번 잡은 책은 책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읽었다는 충녕이 있으니까요.
마지막으로, 태종의 카리스마가 압도적이었습니다.
아빠 친구였던 정몽주를 방해된단 이유로 대낮에 살해하는 과감성과
형을 이용해서 최대한 정상적으로 왕위를 승계받는 침착함을 겸비한 태종이니
마지막 까지 고민하긴 했지만 결국 충녕을 선택하는 성공적 선구안을 발휘한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