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멸망 후 연남생,연남건은 어떻게 되었나요?
고구려 멸망의 원인이 연남생이 배신이라고 들었는데요. 고구려 멸망 후 이 연남생과 대막리지였던 연남건은 어떻게 됐나요?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구려의 연개소문의 아들로 연남건은 끝까지 당나라 군과 싸웠고 자결했으나 죽지 않았습니다.
당나라에서 유배를 당하고 기록에 남아있지 않으며 현 연남생은 당나라에 붙어서 잘살았다고 합니다.
정말 권력에 의한 형제끼리 다툼이 나라를 파국도 아니고 완전히 빼앗긴 천하의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2차 고구려-당 전쟁의 실패 후 잠시 숨고르기 중이던 당은 연남생의 전달을 받은 당고종은 사신으로 파견된 연헌성에게 벼슬과 재물을 하사하여 국내성으로 돌려보내고 장군 계필하력에게 명하여 군사를 이끌고 나가 연남생을 맞아들입니다.
666년 6월 연남생은 국내성을 비롯한 6개 성의 주민과 목저성, 남소성, 창암성 등 3개 성의 백성을 이끌고 당나라에 투항합니다.
666년 9월 연남생은 그 공으로 당고종으로부터 특진 요동도독 겸 평양도안무대사의 벼슬을 받고 현도군공에 봉해집니다.
고구려의 최고 권력자였던 연남생은 당나라의 고구려 원정의 향도가 됩니다.
당나라는 50만대군을 동원하여 대대적인 침공을 하고 고구려는 2년에 걸쳐 싸우다 668년 말 수도 평양성의 성문이 당나라와 내통한 승려 신성에 의해 열리며 당연합군은 평양성을 불바다고 만들고 고구려군을 이끌던 연남건은 자결하려 하나 실패, 보장왕과 당나라군에 사로잡히며 고구려는 멸망합니다.
평양성이 함락되고 고구려가 멸망한 후 연남생은 당나라군의 길을 터준 공을 인정받아 당나라 조정으로부터 우위대장군 벼슬을 받고 3000호에 달하는 식읍을 하사받았습니다. 후 연남생은 한동안 당나라 수도 장안에 머물렀고, 그러던 중 676년 나당전쟁에서 당나라 군대가 신라와 고구려 부흥 세력 연합군에게 패배하고 평양에 거점을 뒀던 당나라 세력은 요동까지 쫓겨나게 되고 당나라는 한반도에서의 영향력을 거의 상실하고, 그 큼에 고구려의 옛 북쪽 땅 요동에서도 다시 부흥 운동이 일어날 기미가 보입니다.
당나라 조정은 고구려 유민들을 달래기 위해 677년 연남생을 요동으로 파견하여 안동도호부 관리로 임명되고
연남생은 안동도호부에서 2년간 근무하다 679년 46세의 나이로 안동도호부 관사에서 병으로 사망합니다.
연남건은 평양성이 함락되고 고구려가 멸망하자 연남건은 자살하려하나 실패하고 결국 당나라군에게 사로잡히고 이후 연남건은 당나라 장안에 끌려갔다가 현 쓰촨성 첸저우에 유배되었는데 이후의 삶은 전해지는 바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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