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장웅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부처의 힘으로 외적을 물리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팔만대장경을 만들었다.' 고 현행 한국사 교육에서는 가르치지만, 이 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외적의 침공이라는 국난 앞에서 종교에만 의지하던 고려 조정의 나약함과 무능한 이미지만을 주목하는 꼴이 되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사학자 이케우치 히로시(池內宏)는 1924년에 발표한 논문 《고려의 대장경》에서 팔만대장경을 두고 "몽골의 침공으로 나라가 풍전등화인 상황에서 국방 능력이 없었던 고려 군신들의 종교상 미신의 결과물"이라고 비웃기도 했었고요. 12-13세기 사람 이규보도 "전에도 거란이 쳐들어 왔을 때 초조대장경을 새기니 거란이 알아서 물러갔는데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고 썼기 때문에 오해를 사기 더욱 쉬운 면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서여 민영규(閔泳珪) 박사는 1996년에 발표한 《고려대장경 신탐 - 바로 잡아야 할 그리고 새로운 몇 가지 사실들》이라는 논문에서 대장경 조판이 가지는 의의를 재조명하고자 했고, 여기서 민 박사는 고려 최씨 무신 정권이 불교계를 회유하기 위한 결과물이 바로 재조대장경 조판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고려 무신 정권, 특히 최씨 무신 정권은 선종 불교와 가까워서 상대적으로 기존 왕실이나 귀족들에 가까운 교종 불교계와 사이가 소원했는데요. 몽골군 침공이라는 미증유의 국난으로 부인사(符仁寺)에 있던 초조대장경이 불타는 지경에 이르자, 정권의 반발세력인 교종 불교계를 회유해 아군으로 끌어들이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최씨 정권을 중심으로 국가 결속을 강화하고자 '재조대장경'이라는 16년에 걸친 불교 사업을 주도했다는 것이고, 한 번 만들었던 대장경을 다시 만들었다고 팔만대장경을 '재조대장경(再雕大藏經)'이라고도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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