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암리 학살사건을 사진으로 찍은 스코필드는 어떤 인물인가요?
일제강점기 3.1운동 이후 일본군이 제암리에 있던 종교인들을 교회 안으로 몰아넣고 잔혹하게 학살한 제암리 학살사건은 선교사 스코필드에 의해 미국에 알려졌는데요.
선교사 스코필드는 어떤 인물인가요?
안녕하세요. 천지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스코필드 > 1919년 3월 1일 우리민족이 일제의 식민지배에 항거하여 독립을 선언하고 거족적인 만세운동을 일으켰을 때 이 거사가 일어나기 직전에 이 거사에 대해서 통보받고 협력을 요청 받았던 유일한 외국인 이었습니다.
거사 하루 전날인 2월 28일 저녁 세브란스 병원에 근무하던 이갑성이 스코필드를 찾아와 독립선언문을 보여주며 다음 날 독립선언식과 만세 시위가 있을 것이라고 알려주고 그 독립선언문의 사본을 영어로 번역하여 최대한 빨리 미국 백악관에 보내 줄것을 요청 하였습니다. 3월 1일 오전에도 그를 다시 찾아와 그날 오후에 파고다공원에서 대규모 학생 시위가 있을 것인데 그곳에 오후2시까지 와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스코필드는 기꺼이 사진기를 들고 자전거를 타고 찾아가 만세시위 현장의 사진을 찍어 3.1운동의 실상을 증거 사진과 함께 해외에 알렸습니다.
지금까지도 남아있는 3.1운도 초기의 몇 안되는 사진들은 모두 그가 찍은 것입니다. 스코필드는 3.1운동이 일어나자 한국인들을 적극적으로 돕고 사진과 기록으로 남기며 일제 비인도적 한국인 탄압에 맞서 일본인 고관들을 찾아가 항의하고, 언론에 투고하여 일제의 만행을 폭로 하였습니다.
안녕하세요. 이현정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스코필드는 캐나다 토론토대학교 온타리오 수의과 대학에 들어가 세균학을 전공했고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1916년에 부인과 함께 내한하여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에서 세균학 강의를 밭게 되죠. 그때부터 일제의 식미지배하에 있던 한국인을 동정하고 사랑하였다고 합니다. 3,1 운동 첫날부터 사진을 찍고 기록을 남겼고, 제암리교회 현장에도 몸소 찾아가 제암리와 수촌리에 대한 보고서를 남겼습니다. 3, 1 운동의 산증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3.1정신의 전도자로 일컬어집니다. 언론과 잡지에 3,1 정신에 대한 글을 기고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