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고국원왕이 암군이라고 평가 받는 이유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국원왕은 369년 누구를 이끌고 20,000명의 병력으로 백제 북방의 치양성을 공격하다가 백제의 태자 부여수에게 역으로 당하고 근초고왕이 태자 부여구수를 선봉장으로 삼아 371년 30,000명의 군대를 이끌고 고구려 남쪽의 평양성을 공격했을 때 고국원왕은 친히 나가서 장수들과 병사들을 거느리고 근초고왕과 전투를 벌이가 날아온 화살에 맞았고 상처가 점점 심해져 죽었습니다.
339년 고국원왕은 전연과 동맹을 요청하고 340년 태자를 전연에 보내 조회하는 방식으로 온건책을 펼치는데 전연은 342년 55,000명의 대군을 조직하여 고구려로 쳐들어옵니다.
침공의 의도는 입위장군 모용한 전연 황제 모용황에게 올린 발언에서 고구려와 우문선비를 먼저 멸망시켜 중원을 도모할수 있다고 생각했고, 훗날 후금이 일단 조선부터 정리하고 중원에 집중한 것 처럼 전연 입장에서는 후방의 고구려가 거슬렸습니다.
전연의 남쪽과 북쪽을 공격하는 양동작전으로 고구려의 수도 환도성을 무너뜨립니다.
북쪽에서 고국원왕의 동생 고무가 5만명은 건재하여 모용황이 움직이지 않아 고국원왕 본인까지 사로집히지는 않았으나 미천왕의 왕릉도굴, 살아있는 태후 왕후 주씨와 왕비 등 5만명의 포로가 전연으로 끌려갔습니다.
전연은 고구려를 직접 통치하기보다 재기불능 신하국으로 만드는 정책으로 수도는 철저히 파괴되었습니다.
343년 2월 천여가지의 보물을 바치고 스스로 신하라고 칭하는 중의 노력으로 미천왕의 시신을 돌려받고
345년 소소성을 전연이 빼앗가 갔지만 아무 조치도 하지 않았고 모후 주씨도 10여년이 흐른 모용준때 공물을 바치면서 송환하였으며 369년 2만명의 병력을 이끌고 백제 북방의 치양성 공격으로 백제의 태자 부여수에게 당하니 암군이라 칭하게 됩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구려 고국원왕은 고구려 16대 왕으로 아버지 미천왕이 확장한 영토와 왕권을 대부분 상실한 왕으로 평가되어 무능한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은 임금이라는 뜻을 가진 암군이라고 불렸습니다.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