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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친칠라280
대단한친칠라28023.03.23

갑골문자와 한자는 어떤 연관성을 갖고 있나요?

갑골문자는 은나라 시대 유적에서 발견된 고대 상형문자로 알고 있습니다. 갑골문자가 중국의 문자인 한자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연관성을 갖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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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3.24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甲骨文字(갑골문자)--> 篆刻(전각,전서) -->隸書(예서)-->草書(초서)-->楷書(해서)-->行書(행서)의 형태로 한자의 가장 오래된 기록은 BC 150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허난 성[河南省] 안양[安陽]의 은(殷)왕조의 옛 도시 유적에서 출토된, 이른바 은허문자(殷墟文字)는 거북등딱지와 짐승뼈에 새겨진 복사의 명문이라는 점에서 '갑골문'이라고 불리지요. 이 갑골문의 문자도 이미 관습화되어 있어, 한자의 참된 원시형태는 아니지만 시대적으로 오래되고(약 3300년 전; 글자가 새겨진 갑골문) 쓰여진 문자의 숫자가 많아서 한자의 기원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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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귀갑과 짐승의 뼈에 새긴 중국 고대의 상형문자입니다. 중국 문자의 시초이며 점복의 기록을 새긴 것으로 허난성의 은허에서 많이 발견되었습니다.

    고대 중국에는 거북이 껍데기에 열을 가하여 터진 금을 보고 치는 점술이 있었는데 귀복(龜卜)이라 부른다. 갑골문은 귀복을 친 결과를 기록하려는 목적으로 사용한 문자이다. 물론 일반적인 사건을 기록한 갑골문도 존재하지만 흔하지 않다. 사기(史記) 귀책열전에는 "거북이 껍질을 태워 그 징조를 살폈는데 그 변화가 무궁무진했다."라는 문구가 등장하는데 실제 고고학적 결과와 일치했다.

    복사가 새겨진 갑골은 구성이 좌우대칭인데 서로 반대되는 내용을 점친 것이다. 예를 들어 비가 올지 안 올지 점친다고 해보자. 좌측에는 '모 일에 누가 묻습니다. 비가 오겠습니까?'라는 점을 치고, 우측에는 '모 일에 누가 묻습니다. 비가 오지 않겠습니까?'라는 점을 친다. 그리고 점의 결과가 맞은 쪽에 결과를 기록했다. 고고학적으로는 거북이 배딱지(복갑腹甲)나 등딱지(배갑背甲)에 의도적으로 구멍을 뚫고 균열을 낸 모습이 특징적인데, 구멍을 뚫은 것은 가열했을 때 쉽게 균열되도록 한 조치이다.

    갑골문에는 앞서 언급했듯이 거북이 껍질과 짐승 뼈를 이용했다. 거북이는 주로 남방에서 공급되었는데 갑골문에도 남방에서 거북이를 몇 마리 바쳤다는 명문이 자주 발견된다. 짐승 뼈 중에서는 주로 소, 특히 어깨뼈(견갑골)을 주로 사용했다. 이 외에도 사슴 뼈와 뿔, 호랑이의 뼈를 이용하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사람의 뼈를 쓰기도 하였다.

    갑골에 씌여진 글에는 왕이 직접 그 결과를 판단한 복사가 많이 보인다. 예를 들자면 "갑자일에 점을 쳤다. 왕이 그 결과를 보고 말했다. 사흘 뒤에 비가 내릴 것이다. 삼일 뒤에 비가 내렸다." 하는 형태로, 왕이 점복에 관여한 흔적이 발견되었다. 주로 무정(武丁) 시기 기사가 많은데, 갑골문 해독 결과에 따르면 무정이 거느린 무당이 무려 70여 명이나 되었다.

    당시 상나라는 제(帝)라는 신을 상나라의 수호신이자 주신으로 섬기며 하늘과 자연의 뜻을 물었는데, 군사적인 주제로는 강(羌)족과 인방(人方), 주방(周方) 정벌 문제를 자주 제에게 뜻을 물었다. 특히 갑골문 기록상 주방과 갈등이 심각한데, 주방은 훗날 무력혁명으로 상나라를 전복한 그 주나라이다. 갑골문에 주방은 나라를 뜻하는 방(方)과 무리를 뜻하는 족(族)이 혼용되거나 의도적으로 바뀌어 사용된다. 상나라 사람이 주방에 악감정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

    상나라 이후 천자국이 된 주나라 또한 갑골 문자를 사용했는데, 점을 칠 때 상(商)자를 옷 의(衣)자로 기록하였다. 주나라 사람들 또한 상나라를 비하한 듯하다. 衣의 발음은 '은'으로 추정된다. 또는 상나라의 수도 은(殷)을 비하한 것일 수도 있다.

    출처: 나무위키 갑골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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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갑골 문자(甲骨文字)는 기원전

    1200년 즈음에 처음 등장한,

    중국 대륙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체계적인' 문자이자, 한자의

    직계조상인 문자이다.

    거북이의 등껍질(甲)이나 동물의

    뼈(骨)에 새겨졌기에 갑골문(甲骨文)

    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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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갑골문자는 거북이 등딱지와 짐승의 뼈에 새겨진 문자를 뜻하며 중국 상왕조부터 이어온 갑골문자는 한자의 기원으로 보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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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한도리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갑골문자는 한국 고대의 글자체 중 하나이며, 한자와 밀접한 연관성이 있습니다. 한자는 중국에서 기원한 글자체로, 한국에서도 고대부터 사용되어 왔습니다. 갑골문자는 한자를 쓰는 기술을 토대로 만들어졌으며, 한자와 유사한 형태와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갑골문자를 읽고 쓰는 데 있어서 한자의 이해와 공부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둘은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습니다. 갑골문자는 가장 오래된 한글 글자체 중 하나로, 현재까지도 많은 연구와 보존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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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갑골문자는 대한민국 충청북도 제천시 갑산면 갑골로에서 출토된 고대 상형문자입니다. 이 문자는 고려시대 이전, 약 1,500년 전 신라시대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시대에는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한자와 갑골문자는 서로 관련성이 있습니다. 한자는 중국에서 발전한 문자체계이며, 한자는 고대 중국의 오래된 상형문자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갑골문자 역시 상형문자의 일종으로, 한자와 유사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갑골문자는 중국의 상서문이라는 문자체계에 영향을 받았다는 추측이 있습니다. 상서문은 중국의 명나라 시대에 사용된 문자체계로, 한자와 상당한 유사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갑골문자와 한자 간의 유사성은 상서문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한자와 갑골문자의 차이점도 많습니다. 갑골문자는 한자보다 더욱 간단하고 직설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으며, 상황에 따라 다른 형태로 표현됩니다. 따라서, 한자와 갑골문자는 서로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독자적인 문자체계로 발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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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갑골문자는 고대 한국에서 사용된 문자로, 석기 시대 후기부터 청동기 시대 중기까지 사용되었습니다. 한자는 중국에서 발전한 문자체계로, 한국과 일본 등 다른 국가에서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갑골문자와 한자는 서로 연관성이 있습니다. 고대 한국에서는 중국과 교류를 많이 하였고, 중국 문화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갑골문자는 한자의 형태와 발음을 차용하여 만들어졌습니다. 예를 들어, 갑골문자에서는 '人'을 'ᅵᆫ'으로 쓰기도 하고, '大'를 '대(大)'로 쓰기도 합니다. 이러한 형태와 발음은 한자와 유사합니다.


    또한, 갑골문자와 한자는 모두 음절 문자체계입니다. 갑골문자는 초, 중, 종성을 나누어 표현하며, 한자도 초, 중, 종성을 나누어 표현합니다. 이러한 공통점도 있어, 한국에서는 한자를 사용하게 되면서, 갑골문자와 한자 간에 상호 영향을 주고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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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갑골문자는 대한민국 경상북도 영양군 갑골리 출토된 고대 동아시아 상형 문자로, 신라시대 후기인 7세기 후반~8세기초에 사용되었습니다.

    갑골문자는 중국의 한자와 매우 유사한 문자 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유사성은 중국과 신라 간의 문화 교류와 상호 영향으로 인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실제로 중국과 신라는 왕립학당을 통해 문화 교류를 하였으며, 신라의 고부령(高釜嶺) 등에서는 중국의 문장인 대리석 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한, 신라와 중국의 교역을 보여주는 유물들에서도 중국의 문화와 기술적 영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갑골문자는 중국의 한자에 영향을 받아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중국과 한반도 사이의 문화 교류와 상호 영향이 서로 깊게 작용하였음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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