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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좋아요 감사합니다!!23.05.15

공민왕의 시해와 관련하여 질문드립니다!

공민왕이 개혁 실패로 공민왕이 시해당할정도로 권문세족의 힘이 막강했다는데 찾아보니까 공민왕은 홍륜이라는 자신의 측근인 자제위와 내시에게 시해당했다는데 뭐가 사실인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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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1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5.15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371년(공민왕 20) 7월, 신돈의 문객이었던 이인(李韌)에 의한 신돈 반역 관련 익명서를 기화로 공민왕은 신돈의 도당인 기현(奇顯), 최사원, 진윤검(陳允儉), 고인기[석온](高仁器(釋溫)) 등을 잡아 심문한 뒤 죽였다. 이어 신돈을 수원으로 귀양보낸 후 죽였다. 신돈의 반역 모의의 구체적 내용은, 자신의 권세가 강해짐에 따라 왕이 자신을 죽이지 않을까 염려하여 먼저 왕을 시해하고자 했으나 한차례 실패했으며, 이에 다시 시해를 위한 모의를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돈의 반역 모의가 실재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예컨대 신돈의 도당들이 처형되고 있는 상황에서 신돈 자신은 며칠 동안 그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점, 공민왕이 그를 죽이면서 그의 죄를 묻는 글에 처음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자식을 낳은 것과 도성 안에 7채의 집을 지은 것 등을 들고 있을 뿐, 반역과 관련한 내용은 없는 점 등은 신돈 반역 모의의 실재성을 의심스럽게 한다.

    이에 신돈의 실각은 그를 통해 이루어졌던 공민왕의 개혁에 대한 세족들의 반발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는 측면이 있다. 더하여 이는 신돈을 통해 정치세력을 재편하고, 이를 통해 국정주도권을 장악하고자 했던 공민왕의 시도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둠으로써 공민왕이 파행적인 정치운영을 청산하고자 한 결과로 볼 수 있는 측면도 있다. 공민왕과 신돈의 관계 균열이 공민왕의 국왕권이 신료층을 제어해가는 과정이 어느 정도 완료된 시점과 맞물려 있으며, 공민왕이 명에 대한 사대를 결정함으로써 그간 그의 국왕권에 장애가 되었던 몽골과의 관계를 완전히 정리하게 된 시기와도 맞물린다는 점에서 그렇다.

    출처: 우리 역사넷 신돈 공민왕을 대신한 개혁가! 노비들에겐 성인, 권력자들에겐 요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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