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성촌에 대해서 알고싶은게 있습니다.
집성촌은 어떤 이유로 형성되었는지 그 이유와 함께 언제부터 집성촌이 형성된 것인지
그 시기와 배경이 궁금합니다.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집성촌의 개념과 형성 배경이 궁금하군요.
집성촌이란 하나의 지배적인 동성 동족 특정 마을에서 주도권을 가지고 집단적으로 거주하는 마을을 말합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 집성촌이 양산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이후라고 합니다. 집성촌 양산을 17세기 이후로 잡는 이유는 16세기 이전까지는 자녀 균분 상속이 철저하게 지켜졌고, 그런 이유로 집성촌의 형성이 활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에는 부모들이 아들과 딸, 친손자와 외손자를 구별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을 뿐 아니라 사위[딸]와 함께 사는 경우가 많았고 부모의 제사도 자녀들이 아들딸 구별 없이 돌아가며 지내는 것이 보편적이었습니다. 따라서 동족 부락인 집성촌은 사회 전반에 성리학 이념이 뿌리를 내려 부계(父系) 중심의 가부장적 질서가 정착되는 17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형성되기 시작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박세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국의 집성촌은 17세기 후반부터 나타났다고 합니다. 삼국 시대에도 집성촌은 있었지만 유교가 보급된 조선 시대 중후반에 본격적으로 집성촌이 형성된 것이라고 하네요.
집성촌이 생기게 된 베경은 양반들의 경제적 문제, 특히 재산 상속과 관련이 깊다합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집성촌은 같은 성씨들이 모여 사는 마을입니다. 집성촌의 형성은 상속과 결혼 제도의 영향으로 형성된 것입니다. 조선 시대 중기까지만 하더라도 남자들이 장가가 처가살이 사례가 많았습니다. 즉, 혼인 직후 신부집에 머물러 살다가 자녀가 성장할 때까지 처가살이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때까지만 해도 이성촌락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17세기 이후 성리학적 명분론이 일반화되면서 상속이 장자 중심이되자 형제들은 결혼을 하더라도 종손 집 근처에 머물며 사는 것이 일반화되었습니다. 따라서 신부의 입장에서는 시집살이가 일반적인 결혼 풍습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동성촌, 또는 집성촌이 형성되었습니다. 게다가 사족의 중심의 향촌 지배가 약화되면서 동족의식이 강화되고, 이를 통해 촌락에서 지배권을 유지하려 한데서 동성촌 형성을 가속화합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양미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국의 집성촌은 17세기 후반부터 나타났습니다.
삼국 시대에도 집성촌은 있었지만 유교가 보급된 조선 시대 중후반에 본격적으로 집성촌이 형성된 것이니 참고하세요.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