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유학은 조선과는 어떻게 다른가요?
유학에 있어서 조선은 유학이 탄생한 중국보다 더 유학을 중요시 하고 발전시켜온 것 같은데요.
유학이 탄생한 중국은 유학이 어떤식으로 발전했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중국의 춘추전국 시대에 노나라에서 태어난 공자는 도덕과 예의로써 다스리다는 덕치사상을 강조하였고 정명론과 대동사회 경제적 분배의 형평성 등 내세웠습니다. 그러나 춘추시대의 제후들은 더 많은 땅과 백성을 갖고자 했기때문에 공자는 뜻을 펼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인 자로 자공 안연 증자 등과 세상을 주유하다가 말년에 노나라로 돌아와서 춘추라는 노나라의 역사서를 집필하고 생을 마감합니다. 진나라의 시황제가 중국을 천하통일하면서 법가사상(이사와 한비자)을 바탕으로 하였고 분서갱유(유교경전을 불태우고 460여명의 유학자들을 생매장 시킴)로 유학을 탄압하였습니다. 차후로 한ㆍ당나라 때는 유교경전을 복원시키고자 한 훈고학과 경학의 모습으로 송나라 때는 성리학으로 명나라 때는 양명학이 청나라 때는 고증학의 모습으로 바뀌어 전해오게 됩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중국 유학의 도 자료들이 비록 조선 유학의 발전에 토대가 되었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그 한계가 있다는 점도 밝히지 않을 수 없다. 대체로 중국 유학의 도 혹은 도설들은 과거 문물의 형상을 복원한 점과 고대 성왕들의 경세의 치적에 작용한 궁극적 원리들을 밝히기는 했지만, 성인의 도를 구현할 수 있는 구체적 방식에 대한 논의를 담은 도는 찾아보기 어렵다. 또한 反求諸身의 방식은 유학의 원리에 따라서 이루어지는 자신의 실천과 그로 인한 체험을 다시 도의 제작에 반영하는 결과를 낳기 마련인데, 중국 유학의 자료들로부터 그러한 자취를 발견하기는 어렵다.
-출처:한국학술지인용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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