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뛰어났다고 알려진 중전은 누구인가요?
우리나라 조선시대 역사상 왕을 보필하고, 내조를 잘했다고 평가받는 중전마마는 누구인가요?
또, 어떤 업적때문에 그런 평가를 받는지도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왕조 최고의 내조의 여왕은 바로 소헌왕후 심씨 입니다. 세종대왕이 칭송 받기 전까지는 왕권의 기틀을 다져준 아버지 태종 이방원과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던 문무 대신, 그리고 조선왕조 왕비 중에서 가장 훌륭한 내조자, 내조의 여왕 부인(왕비)소헌왕후 청송 심씨(1395~1446)가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합니다. 태종이 자기의 아버지인 심온을 죽이고 소헌왕후 심씨의 가족은 천인(賤人)으로 됐다가 얼마후 국모(國母)의 집안은 천인이 될 수 없다는 태종의 하교에 양민(良民)이 되었다고 합니다. 조선의 창업공신이며 고려 때부터 명문집안이었던 청송 심씨 소헌왕후의 친정은 멸문지화를 당하지는 않았지만 몰락하였다고 하지요. 1426년(세종 8년) 소헌왕후 심씨의 친정어머니와 자녀들이 천안(賤案, 관노비)에서 벗어나 복원되지만 이렇게 왕비인 까닭에 자신의 친정 식구들이 다 죽임을 당하고 노비가 되는 마당에도 내조를 하며 세종 대왕을 살뜰이 뒷바라지한 소헌왕후야 말로 진정한 내조의 여왕 이였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명성황후 아닐까여
명성황후(1851~1895)는 조선시대사뿐만 아니라 한국사 전체를 통틀어 매우 독특한 행보를보여준 왕비였다. 역사상 권력의 정점에 오른 왕비들은 종종 있었지만, 그들이 권력을 쥔 것은 지아비인 왕이 죽고 난 뒤, 아들이나 손자를 내세워 수렴청정하면서라던가, 아니면 명문가인 친정을 등에 업고 왕을 뒤에서 조종하는 방법을 통해서였다. 명성황후는 이전의 왕비와는 확연히 달랐다. 그녀는 지아비인 고종이 국정을 의논하는 가장 가까운 상대였으며, 외국의 세력들이 고종보다도 더 예의주시했던 권력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었다. 그녀는 명문가 친정의 도움으로 왕비 자리에 오르지 않았으며 오히려 자신이 왕비가 되어 정치적 필요에 의해 친정세력을 키웠다. 살아 있는 왕보다도 더 주목받으면서 사실상 왕과 권력을 나눠 가졌다고도 보이는 명성황후의 존재는 당시 망국으로 치닫는 조선의 특수상황을 고려하고 생각하여도 매우 특이하고도 경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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