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영조의 아동학대는 어릴적부터 시작되는데, 기대가 컸기 때문에 엄격하게만 키워집니다.
혜경궁 홍씨의 주장에 따르면 둘의 성격이 너무 극명해 충돌이 잦았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한중록에서 두 사람의 성격을 말하는데 영조는 꼼꼼히 살피고 재빠른 성품인데, 세자는 덕성은 거룩해도 과묵하고 행동이 빠르지 못하다고 기록합니다. 그래서 세자의 모든 일이 부왕의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평소 묻는 말에도 즉시 대답하지 못해 머뭇거리며 대답하고 영조는 매번 갑갑하게 여겼습니다.
사도세자와 영조가 이러한 갈등을 빚은 것은 영조가 정통성 문제로 신하들에게 오래 시달렸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는데, 영조는 왕세제를 거쳐 즉위한데다 어머니 숙빈 최씨 마저 무수리 혹은 그에 준할 정도로 신분이 미천했고, 오죽하면 게장으로 이복형 경종을 암살했다는 항간의 소문에 까지 시달려야 했습니다.
오히려 사도세자의 정통성에 문제가 있다면 어머니가 비록 후궁일지언정 양인 출신으로 추정되는 궁녀 출신이었고 별다른 사건을 일으키지 않아, 오로지 아버지 영조뿐이고 이때문에 일각에선 영조가 사도세자를 질투했다 혹은 열등감을 느꼈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부왕의 가혹한 학대를 견디지 못한 사도세자는 결국 미쳐 대낮에 내관과 종들을 죽이고 궁녀들을 겁탈하는 등 세자로서 절대 보여서는 안될 온갖 범죄를 저지르기에 이르는데 이 사실을 안 영조는 격분하며 끝내 정신병자가 된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줄 생각을 포기, 후계자로서 모자람이 없는 손자 세손에게 왕위를 물려주기로 결심하면서 이에 방해만 되는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