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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한태양새227
클래식한태양새22723.05.18

사도세자와 영조의 사이는 왜 안좋았나요?

어렸을적 영조는 총명한 사도세자를 굉장히 예뻐했다고 들었는데 그런 영조와 사도세자가 어쩌다가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는 일까지 가게 된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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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영조의 경우 체격이 가늘고 호리호리한 체격과 주요 관심사는 학문과 글공부였고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 비천한 출신과 경종 독사설 등 재위때 이인좌의 난과 당파싸움으로 불안한 정치 환경에서 탕평책을 펼쳐 왕권을 유지하려 했으나 사도세자는 건장한 체격과 학문보다 무예를 더 좋아했고 자신외에 마땅한 후계자가 없으며 영조의 탕평책으로 조정이 안정화되어있던 상태였습니다.

    영조는 자신의 뒤를 이을 후계자가 복잡한 당파싸움을 조율하고 왕권을 주도하길 바라지만 영조 자신이 원하던 군주의 상이 사도세제에게 보이지 않았고 영조가 당시 늦둥이로 본 후계자인지라 너무 기대했던 나머지 사도세자를 엄격히 키우게 됩니다.

    사도세자는 영조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했고 영조의 압박도 너무 심해 결국 사도세자는 영조를 두려워하고 정신적인 문제가 생겨 망가지게 됩니다.

    영조로서는 아들 사도세자를 강하게 질타하지만 사도세자 외에 후계를 이을 사람이 없던 찰나 사도세자의 아들이자 손자였던 정조를 눈에 들이게 되고 정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싶어합니다.

    태종 때 양녕대군, 충년대군 때와 달리 세자와 세손은 부자관계여서 만약 사도세자를 폐세자 하고 세손이 왕위에 오르면 조선의 특징상 권력은 대원군이 된 사도세자에게 권력이 쏠리게 되므로 결국 세자를 죽여야했고 비록 왕이라도 국본인 세자를 죽이려면 단 한가지 명분, 역모 밖에 없어 그것을 충족시켜주었던 것이 사도세자 어머니 영빈 이씨의 고발이었습니다.

    임오화변으로 사도세자가 역모로 죽었지만 영조는 정조를 왕으로 만들기 위해 사도세자가 죽은 뒤 바로 사도라는 시호를 내려 부자간의 정이 있듯 보이게 했고 그가 왕을 시해하려고했지만 그것은 그의 광증에 의한 것으로 실제 역모를 꾸민것이 아닌것으로 세손이 왕이 될 명분을 내세웠고 결국 정조는 왕위를 이어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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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하지만 대리청정 기간 동안 사도세자의 광증(狂證·정신병)과 살인·폭행 등 패륜행위가 불거졌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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